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유럽 재정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위기는 지역과 형태를 달리해 계속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세계경제의 조기회복을 주장하던 시장근본주의 경제학자들조차도 이제 10년 내외의 장기 저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3년은 이런 장기 저성장 체제의 본격적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0~2012년의 경제성장은 대공황에 버금가는 2008~2009년 경제위기에 대한 반작용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달러 양적완화 효과나 중국 정부의 천문학적 재정지출 효과 대부분이 사라진 올해부터는 특별한 성장동력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미국 경제가 예전보다 다소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의 경기침체나 유럽의 계속되는 위기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 역시 장기 저성장 효과를 직접적으로 겪을 것이다. 당장 올해 초부터 상당수 제조업 기업들이 휴업 또는 조업시간 단축을 계획하고 있다. 건설·철강·조선 등의 산업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꽤 큰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 자동차는 하반기에 생산이 늘기는 했지만 상당 부분이 예년보다 큰 '연말 밀어내기 판매'를 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올해 초에는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 전자산업은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 확대와 LG전자의 공격적 투자 확대 등으로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대부분의 매출 효과가 국내가 아니라 해외공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국내 노동자들에게는 그다지 체감 효과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히려 두 전자대기업 모두 올해부터 반도체·LCD패널 등 기존에 국내에서만 생산하던 제품 상당수를 중국에서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관련산업 종사자들이 상당한 위기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얼마 전 전경련을 방문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자제를 요청했던 것은 대기업 상당수가 2013년 상반기에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일자리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새 정부인데 '출범 초기부터 초치지 말라'는 경고를 대기업에 보낸 것이다. 재벌 대기업의 구조조정·인력감축은 정부 차원의 여러 압력 때문에 당장 크게 발생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계약해지와 하청기업 쥐어짜기, 지속적 권고사직 등 이른바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은 상반기 내내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정책은 예전 정부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당선자는 창조경제로 민간부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지만, 사실 그 내용은 거품으로 끝난 김대중 정부 시절의 벤처기업 육성정책과 비슷하다. 현실성도 낮고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도 고용증가 효과보다는 자산거품 효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정부 재정으로 몇 가지 고용지표를 보여 주기 식으로 개선하는 것 외에 별다른 수가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말년에 고용노동부 주도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노동시간단축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비슷하게 계속될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올해 3월부터 주야 각각 10시간 근무체제를 '8시간+9시간' 체제로 바꾸고,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 조업시간에 직접 영향을 받는 일부 부품사도 조만간 근무체계를 바꿀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과 동시에 사용자들이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변형근로시간제를 동시에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양대 노총이 요구해 온 노조법 개정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이념적 지향을 보면 노조법 개정은커녕 오히려 이명박 정부 시절 일관되게 추진된 민주노조 탄압 정책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명박 정부 스타일과는 약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인 사찰 등에서 나타났듯이 사업장 수준까지 청와대에서 직접 관리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총연맹과 산별연맹 수준의 투쟁에 대해서만 관리하고, 나머지는 일선에서 알아서 하는 방식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정부가 그렇듯이 집권 초기에는 상징적 노동쟁점에 대해 일정한 포용정책을 쓸 것이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의 촛불시위 트라우마를 알고 있는 새누리당 정부는 총연맹이나 산별연맹 수준의 대정부 투쟁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단호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장기 저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정부의 반노조 정책이 5년 더 이어지는 상황이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주체적 대응력은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집행부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있다. 당장 올해 초부터 사용자들이 공격적인 임금동결과 인력조정을 계획하고 있는데도 민주노총 차원의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올해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적당한 조직 추스르기 수준의 계획이 아니라 위기가 기회라는 각오로 공세적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장기 저성장 경제라는 조건에서는 예전과 같은 방어적 투쟁만으로는 노동운동이 본전치기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불능력이 되는 일부 사업장에서는 양보교섭을 통한 노사 담합으로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대다수 사업장에서 사업주들은 대놓고 노조에 항복을 요구할 것으로 우려된다. 관성적 산별 투쟁이 정부에 의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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