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노동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 건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입니다. 2013년 11월 노동자대회를 전에 노동중심 진보적 대중정당을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

‘노동중심의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노진사)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대회의실에서 ‘18대 대선 평가와 진보정치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나왔다. 노진사는 통합진보당 탈당파와 노동중심 진보정당을 고민하는 노조, 진보정치 활동가들로 구성된 전국 네트워크 조직이다. 최규엽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홍희덕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홍희덕 노진사 공동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세밑 대선과 노동자의 잇단 죽음으로 우리 모두 가슴 아픈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18대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진보정치가 갈가리 찢기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했다. 조준호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축사를 통해 “대선 이후 너무도 힘든 시련의 시기를 맞고 있다”며 “그럼에도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꿈을 꾸면서 소중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음을 잊지 말자”고 밝혔다.

진보도 집권할 수 있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최규엽 노진사 공동대표(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는 “이번 대선은 (여야 후보의) 거시정책이 유사해 차별화와 쟁점화에서 실패했다”며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의 공약은 과거 진보정당 정책 베끼기와 참여정부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으로 진정성과 신뢰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여야 후보의 진보정당 정책 베끼기에 대해서도 “진보정당이 (계속 잘했더라면) 집권도 불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무상의료·무상교육 등 복지정책의 원조가 옛 민주노동당인데도 당시 우리 내부에서는 우리 것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최 공동대표는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감동을 주지 못한 것도 패인으로 꼽았다. 그는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아마추어리즘적인 모습도 있었지만 민주통합당의 패권적 자세가 더 문제였다”며 “문 전 후보도 노무현 정권 때 정리해고·비정규직·명예퇴직·집값과 등록금 상승 등의 과오에 대해 진정 어린 성찰보다는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갔다”고 비판했다.

진보진영 자멸과 정체성 상실

진보진영이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최 공동대표는 “지난해 4·11 총선 이후 진보정치가 자멸하면서 진보와 노동이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진보세력의 부재가 박근혜(보수)대 문재인(진보) 양자구도로 착시를 일으키고 보수층의 총결집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진보정의당의 문재인 후보 지지와 정책연대는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연대를 촉진하는 부분적 계기가 됐다”며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TV토론에서의 발언과 막판 사퇴 기자회견으로 보수층 결집에 기여하는 역효과를 냈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이 ‘비주류 기득권 세력’으로 비춰지면서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 공동대표는 “야권은 중산층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은 반면 서민층 다수에게 외면을 당했다”며 “진보진영이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이미지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학로 진보정의당 충남도당 위원장은 “이번 대선에서 30대 전후의 자녀를 가진 30대 여성들의 선택에 주목해야 한다”며 “그들이 박근혜 후보를 많이 찍은 이유는 육아와 일에 대한 고민에 대해 박 후보가 상대적으로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동중심 진보정당으로 재창당 필요”

그렇다면 진보진영은 어디로 가야 할까. 최 공동대표는 “환골탈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묻지마 야권연대와 통합진보당 사태와 분열, 주요 간부들의 민주통합당과 안철수 캠프로의 무분별한 줄서기, 고질적 정세 오판과 같은 진보진영의 구태·무능·독단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행동하며 참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공동대표는 이어 “노동중심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재창당할 필요가 있다”며 “2013년 11월 노동자대회 전에 창당대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 재편 과정에 휩쓸리지 말아야”

노동중심 진보적 대중정당 창당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인숙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자칫 빅텐트론 등에 흡수되지 않을까 우려가 높았겠지만 패배로 인해 역설적으로 독자생존론이 지켜질 가능성이 커졌다”며 “진보정치도 과감한 자기혁신을 하고 새로운 지도그룹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최고위원은 “노동중심 진보적 대중정당 재창당 시기가 2013년 하반기면 (2014년 지방선거 준비 등에서) 늦은 감이 있다”며 “상반기로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울산시의원(진보정의당)은 “옛 민주노동당부터 수많은 선거를 봐 왔지만 이번 선거처럼 이렇게 관심이 없는 선거는 처음”이라며 “통합진보당 사태로 분열되고 현장에서는 동력을 잃어버려 지지후보가 엇갈리면서 계급투표를 이뤄 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방용승 전 통합진보당 전북도당 위원장은 “민주통합당은 연대·연합정치로 재미만 보려고 했다”며 “작지만 질로 승부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할 일인 만큼 민중이 원하는 것이 뭔지 확실히 대변하는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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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 중심 진보정치 절실”

홍희덕 노진사 공동대표
(전 민주노동당 의원)

“기존 대기업이나 조직노동자만 아니라 비정규·미조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까지 노동이 자리매김하는 정치를 만들기 위해 노진사가 결성됐다.”

홍희덕(63·사진) '노동중심의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노진사) 공동대표는 “통합진보당으로 회귀하지는 않고 노동중심 진보적 대중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진사는 지난해 10월27일 출범한 전국 네트워크 조직이다. 전국 16개 시·도에 대표단을 두고 있다.

홍 공동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치의 맏형인 권영길 전 의원이 야권단일후보로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도우러 다녔다”며 “현장에서 노동자가 중심에 서는, 혁신하는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진사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대선 이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노동중심성을 뿌리 깊게 박고 진보적 대중정당 창당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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