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는 그 어느 해보다 ‘하늘’로 올라간 노동자가 많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살을 에는 영하의 추위에도 송전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죽음의 행렬도 이어졌다. 지금까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23명이 생을 달리했고, 18대 대선이 끝나자마자 4명의 노동자와 1명의 시민단체 활동가가 세상을 등졌다. 노동자들은 "희망이 없다"는 침통함 속에 또 한 해를 넘기고 있다.

'박근혜 시대' 개막, 노사관계 향방은 오리무중

2012년 대한민국은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상반기는 4·11 총선이, 하반기는 18대 대통령선거가 사회적 이슈를 잠식했다. <매일노동뉴스>가 100명의 노사정 관계자와 노동전문가를 상대로 실시한 ‘2012년 10대 노동뉴스’ 설문조사에서도 올해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18대 대통령에 박근혜 당선’이 뽑혔다. 응답자 중 64명이 대선 결과에 주목했다.

거대 양당 간 대결로 치러진 이번 대선은 ‘50·60대의 반란’을 보여 준 노년층의 결집에 힘입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정권교체로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던 노동계의 바람은 좌절됐다.

좌절은 절망을 낳았다. 대선 이틀 뒤인 지난 21일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노조사무실에서 목을 매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생전에 정리해고와 생계난으로 고통 받았던 고인은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 못하겠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는 유서를 남겼다. 다음날에는 이운남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가 19층 높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성탄절인 25일에는 이호일 대학노조 한국외대지부장이 노조사무실에서 목을 맸고, 이 지부장의 장례절차를 책임지던 이기연 지부 수석부지부장이 26일 새벽 갑작스런 심근경색 증세로 빈소에서 쓰러져 결국 사망했다.

숨진 노동자들은 모두 노조간부를 지냈고, 하나같이 해고와 생계난을 겪었다. 노동계는 이들의 죽음을 두고 “비정규직·노조탄압·정리해고라는 토끼몰이가 부른 비극”이라며 침통해하고 있다. 그런 만큼 박근혜 당선자가 비정규직·노조탄압·정리해고라는 누적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노동공약을 보면 전환적 국면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당선자는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자는 노동계의 제안에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노조탄압 문제를 증폭시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하자는 노동계의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정리해고 문제에 있어서는 정리해고 전 사용자의 해고회피 노력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냈지만, 공약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키운 괴물 '창조컨설팅·컨택터스'

10대 노동뉴스 2위에서 6위는 치열하게 전개된 노동자들의 투쟁과 관련한 사건들이 이름을 올렸다. 2위는 ‘철탑 오른 노동자들 … 현대차 사내하청·쌍용차 정리해고자·전북버스 조합원’(59표), 3위는 ‘SJM 파업과 컨택터스 용역폭력 사태’(54표)가 차지했다.

이어 4위 ‘쌍용차 노동자 23번째 죽음과 김정우 지부장의 41일간 단식농성 … 새누리당, 대선 뒤 국정조사 수용’(50표), 5위 ‘쌍용차·용역폭력 청문회서 노조파괴 시나리오 창조컨설팅 부당노동행위 의혹 증폭’(47표), 6위 ‘대법원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 현대차 정규직 확정 판결’(45표)로 집계됐다.

2위에서 6위까지의 사건들 역시 ‘비정규직·노조탄압·정리해고’로 요약된다. 그동안 의혹 수준에 머물렀던 이른바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충격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폭로한 자료에 따르면 회사측과 노사관계 컨설팅 계약을 맺은 뒤 ‘노조 파괴’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온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최근 7년간 14개 노조를 무너뜨리는 데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지난 10월 창조컨설팅의 설립인가를 취소하고, 창조컨설팅 심종두 대표와 김주목 전무의 공인노무사 자격등록을 취소했다. 그럼에도 회사측과 자문계약을 맺고 노조 깨기에 나선 제2, 제3의 창조컨설팅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복수노조 시대가 열린 뒤 어용노조가 급증하고 기존 노조가 무력화되는 추세와 맞물려 노조 깨기는 컨설팅 업계에 ‘돈 되는 장사’로 인식되고 있다.

노조를 무력화해 돈을 버는 세력은 또 있다.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돌격대인 사설경비업체들이다. 사용자들에게 돈을 받고 안산 SJM 노동자들을 상대로 전투를 대행한 ‘컨택터스’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노사관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민간 군사기업을 표방하며 실제로 막강한 군사장비까지 갖췄던 컨택터스는 경찰력이 국민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내버린 사이, 노동자를 때려잡았다.

수원지법은 최근 컨택터스 운영자들에게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 조직적·계획적으로 범행을 공모한 점, 40명 넘는 근로자들이 다친 점 등에 비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컨택터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컨택터스는 최근 채용포털 사이트에 “노사분쟁 시설보안 등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며 “대학생 단기 아르바이트 환영”이라는 공고를 올렸다.

초유의 양대 노총 위원장 사퇴, '노동조직 재건' 과제로

10대 노동뉴스 7위부터 10위까지도 굵직한 노동현안이 선정됐다. 7위는 40표를 받은 ‘박원순 서울시장, 직·간접고용 비정규직 7천598명 정규직 전환 … 1·2차 비정규직 대책 발표’가 차지했다. 10대 노동뉴스 가운데 가장 ‘밝은’ 내용의 사건이다.

박원순 시장은 올해 5월1일부로 서울시와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1천133명의 기간제(직접고용) 노동자들을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데 이어 이달 5일에는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서울시와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6천231명을 직접고용하거나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서울시 2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보호하는 것은 노동의 상식”이라며 “다른 지자체도 많은 동참을 바란다”고 말했다.

8위는 ‘국내 완성차 노사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합의’(39표), 9위는 ‘공정방송 실현, 사상 초유 방송 3사 공동파업 … MBC는 170일 최장기간 파업’(38표), 10위는 ‘양대 노총 위원장 사퇴 … 정치방침 갈등에 밀려난 이용득, 직선제 논란에 밀려난 김영훈’(35표)이 각각 차지했다.

이 중 완성차업체의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은 산업 전반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는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완성차를 시작으로 자동차 부품사로 이어지는 교대제 개편 시도가 ‘OECD 최장노동 국가, 코리아’라는 오명을 벗게 할지 주목된다.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불러올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올해는 양대 노총 위원장이 모두 사퇴한 초유의 해다.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민주통합당으로의 지분 참여’라는 한국노총의 정치방침이 조직 내분으로 번지자 이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이어 지난 9월 치러진 임원 보궐선거에서 문진국 전국택시노련 위원장이 한국노총의 새로운 수장에 당선됐다.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직선제 논란’으로 임기를 두 달여 남겨 놓고 사퇴했다. 올해 10월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진통 끝에 ‘직선제 유예안’이 가결됐지만, 김 전 위원장은 “직선제를 집행하지 못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났다. 그런데 당시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 투표관리가 부실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직선제 유예안은 무효가 됐다. 민주노총은 '조직 재건'이라는 엄중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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