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박근혜가 당선된 이유로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세대별 투표다. 투표권자 수가 많은 50대의 박근혜 지지가 20~30대의 문재인 지지를 이겼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왜 50대가 박근혜를 지지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나이가 들어 보수화됐다느니, 아니면 김대중·노무현을 지지했던 87년 넥타이 부대가 변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뿐이다. 그런데 만약 연령에 따른 보수화가 선거의 중심 변수라면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유럽에는 보수당 정부만 들어섰어야 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

넥타이 부대(고학력 사무직)의 투표성향이 민주통합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변한 것이 결정적 변수라는 것은 더욱 이상하다. 50대 대부분은 전두환의 대학 대중화 시대 이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력 분포로 봐도 고졸 이하가 압도적이다. 시대 상황에서 상징적 의미라면 모를까 50대의 고학력 사무직이 투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세대론에 입각한 대선 평가는 개혁진영의 치부를 가리는 역할 이상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50대를 포함해 노동자들 다수가 박근혜를 찍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선 다음날 마트에서 만난 50대 후반의 여성 노동자는 평소와 달리 즐거운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었다. 왜 박근혜를 찍었냐고 묻자 그가 분명하게 답했다. 그는 민주당 정부에서는 고생만 했지만, 그래도 그 전 시대에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남성 가장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불가능해진 99년에 노동시장에 진출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비정규직으로 서비스업에 취업해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의 임금을 받고 지금까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남편은 이른바 3저 호황 세대였다. 8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한국이 초고성장을 하던 시기에 제조업체에 들어가 98년까지 그럭저럭 돈을 벌어 가족을 꾸렸던 전형적인 정규직 제조업 노동자였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모든 게 변했다. 40대 후반이 된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마지막 희망도 꺾였다. 노무현은 ‘개혁’의 이름으로 그를 영원한 비정규직 상태로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그래도 너무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이명박 시절에는 경제위기로 약간 나빠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대중·노무현 시절보다 나았다고 했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이명박 시절에 임금인상이 가장 낮았고, 각종 민주주의 관련 지표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 98년부터 10년간 벌어진 일에 비하면 그럭저럭 버틸 만한 5년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에게 민주통합당이나 진보진영의 ‘복지’ 담론과 이명박 심판론은 먼 나라 이야기였고, 더 나쁘게 말하면 사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박근혜의 “잘살아 보세”가 상징하는 성장의 시대는 그에게 분명히 더 나은 생활을 안겨 줬었다. 신뢰할 수 없는 세력의 경험해 보지 못한 ‘복지’와 분명한 역사적 실체가 있는 ‘성장의 열매’ 사이에서 그의 선택은 분명한 합리성이 있다. 역사적 평가에서도 그를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몬 김대중·노무현과 약간 더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인 이명박은 비교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물론 이 노동자가 50대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위 노동자의 예는 고령화에 따른 보수화론이나 넥타이 부대의 투표성향 변화론보다는 50대 노동자들의 객관적 현실을 더 잘 보여 준다. 통계적으로 봐도 50대의 평균소득 감소나, 50대 여성 노동자의 증가, 퇴직을 앞둔 시점의 경제적 곤란함은 잘 알려져 있다.

요컨대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이나 민주통합당 선거전술 탓이 아니라 개혁의 탈을 쓰고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한국의 개혁진영, 이를 비판하면서 대안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진보운동, 여전히 노동자들의 마음보다는 세대론이나 고령화론으로 대선 결과를 해석하려는 이른바 진보개혁진영의 구태의연함이 만든 결과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이를 벗어나야만 우리는 박근혜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 박근혜 시대에 민주노조운동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고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개혁진영의 자기치부 가리기용 과장일 뿐이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민주노조운동은 투쟁 속에서 성장했다. 98년 IMF 구제금융으로 민주노조운동이 크게 위축된 다음에도 2000년대 초반 조직을 재정비해 민주노총을 키웠다.

민주노조를 지키고 키워 나가려는 사람들은, 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은 박근혜를 지지한 노동자들, 노조로부터도 진보적 정치세력으로부터도 배제된 이 노동자들을 조직해 판을 제대로 뒤엎겠다고 결의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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