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이승길 한국경총 법제조사팀장은 '「엇갈린 판결 파문」에 대한 유감'(매일노동뉴스 6월23일자 '이렇게 생각한다')이라는 글을 통해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고 파업에 들어갔던 만도기계 사건에 대한 청주지법과 춘천지법의 판결은 '사실관계가 달라 다른 판단이 나왔을 뿐 법리에 대한 판단은 일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바 있다. 이 주장에 대해 김기덕 금속산업연맹 법률원장이 반론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발문 :

파업을 조직한 노조간부에 대하여 업무방해죄로 처벌함에 있어서는 그 파업이 정당한 것이었다면 모든 노조간부들이 처벌을 면하는 것이지, 노조간부별로 파업의 조직과 가담정도를 구분하여 조직국장에게는 불법파업이고, 지부장에게는 합법파업이라는 식의 결정이 있을 수 있는가.
피고인만 다른 동일한 파업에 대하여 대법원의 같은 재판부가 유무죄로 엇갈린데 대하여 언론이 주목한 것은 당연한 것

김기덕(금속산업연맹 법률원장, 변호사)

(1)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그 조합원의 직접. 비밀. 무기명투표에 의한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하지 아니하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제41조 제1항)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제91조).

이 조문의 취지는 '쟁의행위 개시에 신중을 기하도록 하여 쟁의행위의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쟁의행위에 대한 노조 내부조합원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확보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조합원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실질적으로 확보된 경우에는 위와 같은 투표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2) 이 번 아산지부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0.5.26. 선고 99도4836 판결)도 "조합원의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고 쟁의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찬반투표를 거칠 수 없는 정당한 객관적 사정이 있거나 조합원의 민주적 의사결정이 실질적으로 확보된 경우에는 투표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그 절차가 위법하여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98.5.6-12. 만도기계의 파업은 " '조합원총회 이후 파업에 참여한 인원 등에 비추어 파업에 조합원 대다수가 찬성한 것으로 보아 절차에 위법이 없다'면서 민주적 의사결정의 실질적 확보여부에 초점을 두어 판시한 원심판결(대전지방법원 1999.8.13. 선고 98노2805 판결)에 위법이 없다"고 하였다. '객관적 사정'만 아니라 조합원의 민주적 의사결정 확보를 판단의 근거로 판시한 것이다.

이러한 판결의 의의는 쟁의행위찬반투표절차가 조합내부 민주적 의사결정의 확보에 있고, 결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는 데 있다.

이에 반하여 동일한 파업에 대한 같은 재판부의 노조 조직국장에 대한 이전의 대법원판결(대법원 2000.3.10. 선고 99도4838 판결)에서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았고, 그 절차를 따를 수 없는 노동조합의 객관적 사정이 없었기 때문에 파업은 불법으로 판단한 바 있었다. 이때 언론은 그야말로 대서특필하였다.

(3) 위와 같이 피고인만 다른 동일한 파업에 대하여 대법원의 같은 재판부가 유무죄로 엇갈린데 대하여 언론이 주목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 관계자가 "노동조합의 아산지부장, 본조 조직국장으로 서로 파업과정에서 동원한 물리적 강제력에 차이가 나는 등 사실관계가 달라 다른 판단이 나왔을 뿐 법리에 대한 판단은 일치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 것을 인용하여 경총의 이승길 법제조사팀장은 언론의 대서특필(?)이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유감'이라고 밝혔다(매일노동뉴스 2000.6.23. 11쪽).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해명과 '유감'이다. 파업을 조직한 노조간부에 대하여 업무방해죄로 처벌함에 있어서는 그 파업이 정당한 것이었다면 모든 노조간부들이 처벌을 면하는 것이지, 노조간부별로 파업의 조직과 가담정도를 구분하여 조직국장에게는 불법파업이고, 지부장에게는 합법파업이라는 식의 결정이 있을 수 있는가. 당시 만도기계노동조합은 7개 지부가 있었고, 아산공장내에 노동조합 본조와 아산지부가 같이 있었다.

지부소속이 아닌 본조소속 조합원이 별도로 있지 않았다. 당시 파업은 노조 위원장, 지부장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하였고, 문제가 된 쟁의행위찬반투표는 모든 지부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전 대법원판결(99도4838)에서 문제된 규찰대, 선봉대 등은 다른 지부보다도 아산지부에서 가장 철저히 조직되어 활용되었다. 따라서, '아산지부장과 노조본부 조직부장으로서 서로 파업과정에서 동원한 물리적 강제력에 차이가 나는 등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지적은 적절한 해명이 될 수 없다.

(4) 종래 대법원은 동일한 파업에 대하여 피고인별로 파업의 정당성을 판결한 적이 없다.

다만, 투표절차를 따를 수 없는 정당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지의 여부에 따라 절차의 위법을 판단하고 다른 제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쟁의행위의 정당성 유무를 가리고 있었다.

서울지방철도청 사건(대법원 1992.12.8. 선고 92누1094 판결)도 기존의 철도노조와는 별개로 전국기관사들이 특별단체교섭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한 "파업은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조합도 아닌 위 특별단체교섭추진위원회에 의하여 감행되었던 까닭에 (투표) 절차를 거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인정하고 다만, "그 위반행위로 말미암아 국민의 생활의 안정이나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예기치 않은 혼란이나 손해를 끼치는 것과 같은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쟁의행위로서의 정당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한 경인에너지 사건에 있어서도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은 객관적인 사정의 결여뿐만 아니라, 점거장소와 태양, 평화의무위반, 그로 인한 상당한 회사의 손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였다. 따라서, 이들 판례가 이승길 팀장의 '유감'을 뒤받침할 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승길 팀장의 오해처럼 언론이 결코 '객관적 사정'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이승길 팀장의 쟁의행위 정당성에 대한 법리 '오해'가 풀리도록 법원은 이번 판결(99도4836)의 법리를 확고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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