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2월25일 필리핀에서 ‘민중권력혁명(Peoples Power Revolution)’이 민중들의 승리로 마감됐다. 65년부터 20년 넘게 대통령 권좌를 장악했던 마르코스는 쫓겨났고,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하와이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89년 9월 죽었다. 그와 부인 이멜다가 미국과 스위스 등지에 빼돌린 국부는 수십억달러에 달했다.

마르코스와 박정희는 닮은 데가 많았다. 미국의 후원을 받았고,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다. 베트남 전쟁에 자국 군대를 파병했다. 권력남용과 독재를 자행했다. 72년 9월22일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재선을 넘어 종신집권을 시도했다. 대통령 긴급조치로 언론자유는 사라졌다. 시민들의 자유는 억압당했다. 의회는 해산됐다. 야당지도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은 투옥됐다.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신사회(New Society)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72년 마닐라와 서울의 계엄령

그해 10월17일 3선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국회는 해산됐고, 정당 및 정치활동은 중단됐다. 계엄사령부는 언론·출판·보도·방송을 검열했다. 대학교는 폐쇄됐다. ‘10월 유신’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했고, 군사파시즘 체제가 완성됐다. 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탄에 박정희가 죽었고, 전두환 일당이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80년 5월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은 영구집권을 꿈꿨지만, 87년 6월 민중항쟁에 밀려 직선제 개헌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선배’였던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86년 2월25일 미국 공군기를 타고 괌을 거쳐 하와이로 도망가 89년 9월28일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필리핀의 86년 2월 민중혁명은 한국의 민주화 투쟁에 영향을 끼쳤고, 영감을 줬다. 하지만 ‘민중권력혁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86년 2월 이후의 필리핀은 정치·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발전이 지체됐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별다른 진전을 이뤄 내지 못했다. 군부는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제도 제자리걸음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7년 582달러였는데, 지난해 2천370달러에 그쳤다.

반면 한국의 6월 항쟁은 미완의 혁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7년 이후 한국은 모든 면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을 거치면서 확장됐다. 93년 김영삼 정권의 하나회 숙청으로 군부는 정치에서 퇴장했다. 경제는 중진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했다. 87년 3천368달러였던 1인당 GDP는 지난해 2만2천424달러로 급증했다. ‘한류’ 열풍에서 체감하듯 아시아에서 한국은 역동적이면서도 풍요롭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필리핀의 오늘과 한국의 오늘이 큰 차이가 나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에서 찾는다. 필리핀의 2월 민중권력혁명은 그 이름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민중권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혁명의 과실은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보수야당이 차지했다.

하지만, 6월 민중항쟁은 7·8·9월의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지면서 공장과 사무실에서 노동자 민주주의의 쐐기를 박았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주도하지는 못했지만, 민주노조운동의 등장으로 자리 잡은 일터의 민주화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에서 한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지던 학생운동의 민주주의 전통은 지적·실천적으로 단절됐으나, ‘조직 노동’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이 없었다면, 한국 경제의 질적 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조직노동의 성장과 시민권 획득은 한국 민주주의와 아시아의 다른 민주주의를 다르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전위투사

87년 6월 항쟁 이후 상승세를 탔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2007년 12월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으로 하강세로 접어들었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경시하고, 정치적 자유화에 만족했던 자유주의 세력은 1998년부터 2007년에 걸친 집권 기간 동안 노동자·민중과 거리를 뒀고, 재벌-관료와 연합하면서 민주주의를 전진시킬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 결과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후퇴시켰고, 결과적으로 자유주의조차 훼손됐다.

12월19일 대통령 선거는 두 가지 과제를 노동운동에 던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일반민주적 과제와 더불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민중민주적 과제가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전위투사’라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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