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권이든 임기 마지막 해에는 공통된 현상이 나타났다. 이른바 ‘정권 말기 현상’이다.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가 연달아 터지고, 감옥으로 향하는 풍경이다. 대통령 임기동안 충성한 권력기관의 붕괴도 여기에 포함된다. 유력 대통령 후보자에게 줄서는 정부 고위관료들과 복지부동 행태도 있다. 권력 공백기에 나타나는 징조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비리혐의로 감옥에 가는 것을 지켜봤다. 정권 창출에 일등공신이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비리혐의로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이 정권 내내 권력을 떠받쳐 온 검찰도 비리와 성추문 그리고 자중지란을 겪었다. 정부 출범 당시 측근비리 없는 정부, 반듯한 권력기관을 약속했던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할 말이 없게 된 셈이다.

이쯤 되면 정부는 일주일도 안 남은 18대 대통령 선거 관리와 인수인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끝까지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려 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이틀 전인 이달 17일에 공공기관의 사장 선임절차가 강행될 예정이다. 그것도 국내 최대 공공기관인 한국전력 사장이 이날 선임된다는 소식이다. 같은 날 건설일용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운용하고 있는 건설근로자공제회도 이사장을 선임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국전력과 건설근로자공제회 안팎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한숨만 나온다. 한국전력의 경우 김중겸 전임 사장의 사표는 지난달 16일 공식 수리됐다. 보통 새 사장 공모절차는 공식 사표수리 이후에나 시작된다. 사표가 수리되기 이전이라면 전임 사장은 재직 중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이지 한전은 김 전 사장의 사표 수리 일주일 전인 지난달 9일 이미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같은 날(9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도 한전사장 모집 공고가 게시됐다. 아무리 업무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이 있다지만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런데도 한전은 이달 17일에 주주총회를 소집해 사장 선임절차를 강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중겸 전 사장은 재임 14개월 만에 옷을 벗었고, 최근 3년의 임기를 채운 사장은 드물다. 한전 사장추천위는 응모한 다섯명의 후보자 가운데 지식경제부 차관출신과 한전 고위임원을 사장 후보로 주주총회에 추천할 예정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공제회)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사장이 내정된 상태에서 형식적인 공모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 이사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이다. 그간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출신 인사나 추천인이 내정됐고,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최종 확정됐다. 이런 전례를 깨고 청와대 인사가 이사장으로 내정된 것이다. 전형적인 ‘측근 챙기기’ 낙하산 인사다. 당초 공제회는 이달 6일 이사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이를 17일로 미뤘다. 공교롭게도 한전 사장과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선임절차는 같은 날 진행된다.

보통 정권 말기에는 공공기관 임원으로 가려는 사람이 없다는 속설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 옷을 벗어야 하기에 가려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고위 임원이 채워지지 않아 업무공백이 발생하는 것도 정권 말기 현상이다. 그렇다고 이례적인 공모절차가 진행되고, 낙하산 인사가 내정되는 일은 온당치 않다. 이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러니 ‘못살겠다, 갈아보자(정권교체)’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상 한파로 정전사태 경고가 나오는 한전의 내부 사정을 보면 사장 선임절차는 무리하게 진행돼선 안 된다. 건설일용 노동자의 퇴직금을 운용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도 마찬가지다. 전문성 없는 인사가 이사장으로 내정된다면 혼란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낙하산 인사 논란과 관련 단체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어이 두 기관의 사장 선임절차가 강행된다면 도리가 없다. 끝까지 밥그릇만 챙기는 이 정권을 국민이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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