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5일 서울시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에 따른 대책을 발표했다. 애초 10월께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우여곡절을 거쳐 뒤늦게 공표했다. 서울시 간접고용 비정규직 대책은 해당 당사자들인 서울시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뿐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초미의 관심사였다. 전직 시장들과는 차별화되는 상당히 진전된 전향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대책에 실망스럽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6천231명의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을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직접고용 정규직화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간에 서울시청 신청사 앞에서는 서울시를 규탄하는 항의 기자회견이 잇따랐다. 대학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실제 사용자인 대학당국에 직접고용 방안 마련을 촉구하면서 서울시가 나서 문제 해결에 앞장서 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시립대처럼 서울시가 직접 사용자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학의 비정규직 문제부터 개선해 달라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시청광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서울시 민원상담 업무를 전담해 온 120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이 ‘서울시 2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뒤이어 진행했다.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한 5일처럼 폭설이 내리는 날이면 상담전화가 쇄도해 노동강도가 높아진다는 500여명의 다산콜센터 상담원들의 문제는 ‘콜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캠페인’ 등을 통해 이미 공론화된 바 있다. 무엇보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상시지속 업무임에도 민간위탁 방식으로 간접고용돼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해 온 것으로 밝혀져 직접고용 정규직화 방안이 시급한 직종임이 분명해졌다. 게다가 서울시가 실질적인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원청사용자로서 역할해 온 점도 숨김없이 밝혀졌다. 민간위탁 간접고용 비정규직 확대는 한국 사회를 휩쓸고 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필연적인 결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양산의 주요 통로가 됐다.

이런 마당에 서울시가 가장 많은 비정규 노동자가 일하는 민간위탁 사업장과 관련해서 내년에 민간위탁 실태연구 조사를 통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보류했다. 핵심적인 비정규직 대책의 알맹이를 뺀거나 다름없다. 심히 유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진짜 사용자 찾기가 한창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송전철탑에 올라 혹한 속에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이어 가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실질 사용자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사용자 책임을 다하고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으로 판정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경비 등 용역업체로 고용돼 일하는 다종다양한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바지사장인 용역업체 업주가 아니라 실질 사용자와 고용계약을 맺기를 요구하며 싸워 왔다. 노조법 2조 개정 등 원청 사용자성 인정이 핵심 입법과제로 대두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중 가장 나쁜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들어 빠르게 양산돼 온 간접고용·특수고용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고용안정과 차별개선이 난망해진다. 진짜 사용자를 가리고 온당한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다. 특히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서울시는 올해 노동절 때 현행 기간제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9개월 이상 상시지속 업무를 기준으로 1천133명의 직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모범적인 비정규직 대책을 시행했다.

고용노동부가 현재까지 무려 5차례나 반려한 청년유니온 노조설립신고를 받아들여 서울시 청년유니온을 합법노조로 인정하고 뒤이어 다른 4개 지자체에서도 인정받게 선도한 것처럼 서울시의 전향적인 친노동 정책은 많은 박수를 받아 왔다. 이런 배경 때문에 서울시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기대치가 더욱 커지기도 했다. 초유의 노동보좌관을 신설하며 노동 있는 행정을 실현해 온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말처럼 모범사용주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간접고용 민간위탁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선량한 사용주를 넘어 진짜 사용주로 나서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서울시 간접고용 비정규직 대책의 빈곳인 민간위탁 간접고용에 대한 후속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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