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는 1945년 4월30일 베를린이 소련 적군에 점령되기 직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동지였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도망 중 이탈리아 빨치산에 체포되어 즉석에서 처형됐다. 히틀러 자살 이틀 전이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유럽 전범들은 죽음으로 죄 값을 치렀다.

하지만 아시아 전범은 달랐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미국과 영국의 승인 하에 이뤄졌다. 따라서 조선을 식민지 했다고 처벌받을 전범은 없었다. 하지만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달랐다. 필리핀의 미군, 말레이 반도의 영국군, 인도네시아의 네덜란드군이 일본군에 무릎을 꿇었다. 히로히토 왕의 일본은 히틀러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3각 동맹을 구축했다. 히틀러-무솔리니 이상의 전범임에도 불구하고, 1901년생인 히로히토는 1945년 8월15일 이후에도 미국의 비호 속에 천황 직을 유지했고, 천수를 누리고 1989년 1월7일 눈을 감았다. 물론 그의 장례식은 국장이었다. 일본 우경화의 역사적 뿌리에는 군국주의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정점에 히로히토가 있었다.

과거형 전범국 일본, 현재형 전범국 이스라엘

일본이 과거형 전범국이라면, 미국의 비호로 연명하고 있는 현재형 전범국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이 주도했거나 개입한 전쟁은 큰 것만 14개에 이른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1956년 수에즈 전쟁, 1967년 6일 전쟁, 1982년 레바논전쟁, 2008년 가자 전쟁 등 줄줄 이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은 엄청난 양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인디아·파키스탄·북한과 더불어 핵무기비확산협약(NPT)을 깔아뭉개고 있다. 북한의 NPT 거부에는 불같이 대응하는 미국이 이스라엘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북한의 핵무기와 달리 이스라엘의 핵무기는 미국이 아닌 아랍 국가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핵무기는 최소 80기에서 최대 400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핵탄두를 운반하는 미사일은 1971년 제리코1호, 1987년 제리코2호, 2007년 제리코3호를 차례로 개발했다. 제리코2호는 최대 500킬로그램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최장 7천800킬로미터를 날아간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즉 ICBM인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50~100기의 제리코2호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도 모자라 이스라엘은 제리코3호도 개발해 2008년 실전 배치했다. 최대 1천300킬로그램의 핵탄두를 싣고 1만1천500킬로미터를 날아간다. 이스라엘에서 한국까지의 직선거리는 5천킬로미터도 안 된다. 국제 사회는 몇 기의 제리코3호를 이스라엘이 보유하고 있는 지 추정치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미국은 북한에게 하는 공세의 100분의 1조차도 이스라엘에게 하지 않고 있다.

‘단체’에서 ‘국가’가 된 팔레스타인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팔레스타인도 나라를 나라로 부르지 못했다. 지금껏 국제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위는 일개 단체에 불과했다.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참관 단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 점령한 이스라엘을 도운 미국의 입김 때문이었다.

반갑게도 지난 11월29일 팔레스타인이 유엔 총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참관 국가’ 자격을 인정받았다. 찬성 138, 반대 9, 기권 41로 팔레스타인을 ‘단체’에서 ‘국가’로 격상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베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무의미한 투표”라고 그 의미를 깎아 내렸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유감스럽고 비생산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반대한 9개 나라는 미국·이스라엘·캐나다·체코공화국·파나마·팔라우·나우루·미크로네시아·마샬군도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찬성했을까. 처음에는 찬성하려 했는데, 역시 워싱턴 형님의 눈치가 보였던지 막판에 입장을 바꿔 기권했다.

아시아 국가 중 반대국은 이스라엘이 유일했다. 미국의 눈치나 보는 한심한 나라로 국제 사회의 눈총을 받은 기권국에는 대한민국과 더불어 싱가포르·피지·파푸아뉴기니·사모아·몽고가 이름을 올렸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캄보디아나 라오스 같은 약소국들도 팔레스타인의 국가 자격에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의 입김이라는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은 캄보디아나 라오스만도 못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노동운동은 팔레스타인의 국가 자격 획득에 축하 메시지 하나 보태지 못했다. 피압박 민족을 위한 노동운동의 국제주의는 오간데 없다. 제 코가 석자인 작금의 급한 사정이야 알지만, 축하 메시지 하나 보냈다면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흐뭇해하지 않았을까.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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