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회화 전문강사가 올해 하반기 노동계 비정규직 투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인 지난 2008년 영어몰입교육의 일환으로 초등영어 수업시간을 늘리고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를 도입했다. 영어 사교육을 줄이고 영어교사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당시 목표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최초 목표는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아닌 영어전문교사 도입이었다. 중·고교의 영어수업을 영어회화 중심으로 바꾸고자 했지만 반대여론에 부딪쳐 졸속으로 도입된 것이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였다.

졸속 도입된 관련 제도는 출범 당시부터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1년 단위 학교장과의 재계약과 4년까지만 한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데다, 연봉제 임금체계로 고용불안과 처우개선 필요성이 제도 도입 초기부터 제기돼 왔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중·고교에 근무 중인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6천104명이다. 4년까지로 한정된 재계약 기간으로 인해 올해 초 대규모 해고사태가 우려됐고, 교과부는 9월 계약기간을 8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급한 불이 꺼졌나 했더니 이번에는 노동계가 반발했다. 전교조와 교총은 지난달 "학교 실용영어 강화를 위해서는 전문강사를 통한 정책 추진이 아닌 정규 교사충원이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며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이례적으로 공동행보를 취했다.

이에 대해 학교비정규직노조는 "6천여명의 학교비정규직 해고대란을 불러올 제도 폐지를 성급히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가 부적절한 것은 맞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을 우선 마련하고 그 다음에 폐지를 논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런 가운데 정치권에서 처음으로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의 문제점과 대책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비정규직 영어회화 전문강사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김성태 의원은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했지만 그 속에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개선과 장기 정착을 위한 고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 주제발표에서 육현경 한국초중등영어회화전문강사협의회 부대표(함양제일고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단독수업권과 평가권을 가지고 교원의 일을 하고 있지만 제도에서 교원 외의 자로 규정되고 있다"며 "불안한 신분과 낮은 처우는 물론이고 강사라는 호칭으로 인해 학부모와 학생에게 교권을 세우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학교에서 담임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를 일반 교원과 같이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임금은 교육공무원 초임수준의 연봉에 머물러 있고,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다.

육 부대표는 "안정적인 수업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최소한의 고용안정 방식이 필요하다"며 "2년간 근무평가로 검증된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교육공무직 도입을 통한 정규직화 △학교장 계약에서 시·도교육청 계약으로의 전환을 주문했다.

김현곤 협의회 대외협력실장은 토론에서 "고용안정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도 없이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만족도와 객관적인 실사평가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제도는 유지하되 법적 지위와 고용형태 변화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정 공공운수노조 전회련본부 사무처장은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려면 전문강사의 정규직화와 교원으로의 흡수가 전제돼야 한다"며 "제도 폐지가 아니라 교원과 공무원·교육공무직원이 공존하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들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교육공무직은 학교단위 채용에서 교육청 단위 채용으로 전환시켜 노동조건과 복지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사무처장은 "잘못된 사업으로 채용되고, 사업이 종료됐다고 해서 해고를 반복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강사 신분으로 영어교육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비정규직 당사자인 영어회화 전문강사인 만큼 이를 고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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