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에서 인기 있는 유머가 있다. 사무실에 뱀이 나타났을 때 기업별로 대처하는 방식이다.

현대: 일단 때려잡고 고민한다.(새 버전은 ‘수위를 자른다’)
삼성: 전략기획실에 물어보고 결정한다.(구 버전은 ‘뱀에게 떡값을 준다’)
LG: 삼성의 처리결과를 지켜본다.
한화: 가죽장갑과 야구방망이를 준비하고 회장님께 연락한다.
네이버: 뱀이 사무실에 들어왔다고 뉴스캐스트에 올린다.
다음: 아고라에 뱀 잡는 방법을 물어본다.

이 유머는 우리 기업문화의 후진성과 경직성을 꼬집는다. 최고경영진의 경영방식에 대한 비판도 포함됐다. 직장인뿐만 아니라 공무원·학생들 사이에서도 새 버전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으로 번지고 있다. 회자되고 있는 곳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다. 뱀이 나타났을 때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대처방식은 무엇일까.

한국철도시설공단: 담당자를 ‘대기발령’ 시킨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이사장은 김광재씨다. 지난해 8월 임명된 김광재 이사장은 국토해양부의 항공정책실장·물류정책관을 지낸 고위관료였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사장추천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취임 당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김 이사장 취임 후 징계성 대기발령, 해고와 파면, 직책 강등, 원거리 발령이 줄을 이어 ‘대기발령’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김 이사장의 근태시간이나 코드에 맞추지 못하면 여지 없이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진다는 게 공단 직원들의 하소연이었다. 문제는 김 이사장의 인사조치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졌느냐다.

김 이사장의 인사조치로 해고나 파면 당한 직원 12명 중 9명이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로 판정 받았다. 징계를 당한 3명, 직책을 강등당한 직원 2명도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하다고 결정됐다. 김 이사장은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간단히 무시했다.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을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공단은 돈을 내고 버텼다. 노동위원회로부터 부과된 과태료와 관련 소송비가 1억5천만원이다. 김 이사장은 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김 이사장은 중앙노동위원회·법원·노동부·국회가 직원들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고 지시했는데도 이를 외면했다. 체불된 임금만 18억원에 달하는데 행정소송으로 맞불을 놓았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비전선포식에서 “국민세금을 아끼고 공단의 부채증가를 최대한 억제하겠다”고 했지만, 오기소송에 국민혈세를 쏟아붇고 있는 실정이다.

김 이사장의 불도저 행보는 또 있다. 김 이사장은 여성이 대다수인 본사 기능직 50여명 중 30여명을 지방으로 발령냈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계획에 따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정원대비 12.8%(198명)의 인원감축을 추진했다. 본사 여성 직원의 원거리 발령은 선진화 계획을 조기에 이루기 위한 김 이사장의 ‘꼼수’라는 게 직원들의 시각이다. 육아를 고려해야 하는 여성 직원들에게 지방 발령은 사실상 ‘그만두라’는 얘기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또 간부직을 축소하고, 직위해제된 간부들은 대기발령시켰다. ‘알아서 판단하라’는 게 김 이사장의 메시지였다.

김 이사장의 기행도 회자되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 앞서 김 이사장은 월례조회에서 “야당의원에게 내부 자료를 주는 직원이 있으면 솎아내야 한다”고 말해 화를 자초했다. 이 발언이 공개돼 김 이사장은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지난 5월에는 10조원의 적자가 발생한 공단이 KTX 민영화 홍보비로 7억원가량을 지출했다. 직원들에겐 찬성 댓글을 올리라고 지시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KTX 민영화는 사실상 국토해양부가 주도했는데 김 이사장은 친정을 적극 거든 셈이다.

공단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는 김 이사장의 기행과 설화는 차고 넘친다. 이에 철도시설공단노조는 이달 말에 파업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이런 참담한 상황은 결국 낙하산 인사로부터 비롯됐다.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이 정부의 코드에 맞는 관료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냈으니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공단의 실정에 맞는 계획을 실천하지 않고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무리하게 완료하려 하니 탈이 났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김 이사장의 선택은 분명하다. 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따르던가 아니면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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