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15일 열린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에 참여하면서 노조 전임자임금을 둘러싼 노정 갈등이 해빙모드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노사정 합의로 경영계가 한국노총에 약속했던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 지원을 위해 다음주 중으로 노사공동사업 기금의 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근면위 개최에 반발하는 데다, 대선과 맞물려 한국노총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또 다른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메리어트호텔에서 노·사·공익 위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근면위를 개최했다. 올해 7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요구했던 양대 노총의 참여 거부로 반쪽짜리 제2기 근면위를 출범시킨 후 4개월 만에 노사정(공익) 모두가 참여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한국노총에서는 한광호 사무총장과 최인백 사무처장이 참가했다. 민주노총은 참여를 거부했다.

◇타임오프 한도 논의 시작=
한국노총의 근면위 참여는 근로시간면제(노조활동 전임시간·타임오프) 한도 재결정을 위한 협상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법에 따르면 타임오프 한도는 3년마다 재심의해야 한다. 다음 결정시한은 내년 4월30일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들어 전임자임금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7월 "타임오프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2기 근면위를 출범시켰다. 또 '타임오프 한도를 늘려 줄 수도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노동계에 전달해 첫 회의에 불참했던 한국노총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기획재정부는 경영계가 조성한 노사공동사업 기금 출연을 돕기 위한 법 개정 절차에 착수했다.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은 2009년 노조법 개정 합의와 2010년 노사정위원회 합의를 통해 한국노총에 한시적으로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경영계가 조성한 기금은 30억원에 이른다.

기재부는 2010년 9월 1년간 한시적으로 총연맹단체인 노조가 수행하는 노사상생·협력·증진사업을 비과세 대상인 공익사업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다음주께 해당 규정의 적용시한을 1년간 연장하는 증여세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경영계가 한국노총에 파견전임자 임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사전에 길을 터 놓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이채필 노동부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근로시간면제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이 99.0%에 이르는 등 지난 2년 동안 제도가 빠른 속도로 연착륙했다"면서도 "제도 운영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나 개선해야 할 부분은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고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노동계의 요구였던 △사업장의 지역분포 △교대제 근로 여부에 따른 전임시간 적정한도를 언급하면서 "면제한도에 대한 실태를 조사해 적절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선 앞두고 실효성 있을까=
민주노총은 근면위 개최에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노조법 개정에 뜻을 같이하면서 근면위에 함께 불참했던 한국노총이 입장을 바꿔 회의에 참가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며 "파견전임자 임금을 받기 위해 회의 참여를 거래한 것이라면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전임자임금 문제 해결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 해도 대선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없다는 것이 노사정 모두의 중론이다.

근면위 위원들은 이날 회의에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는 데 합의했다. 실태조사 방법은 노·사·공익 간사들이 차후 협의하기로 했다. 타임오프 한도를 둘러싼 노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다른 상황에서 실태조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합의를 하더라도 실제 조사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나 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가 다음주 공고할 증여세법 시행규칙 개정안도 입법예고 기간 등을 거치면 최소 40일이 지나야 시행이 가능하다. 적용시기는 빨라야 내년 1월이다. 정부가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기금 출연을 위한 길을 닦고는 있지만 경영계는 "대선이 끝나야 뭔가 정리되지 않겠냐"며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파견전임자 임금 관련 협상이 대선과 맞물리면서 한국노총 내부를 흔드는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노조법 개정을 공약한 가운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법 개정보다는 근면위를 통한 타임오프 한도 재협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노총이 대선방침을 두고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총연맹 집행부의 근면위 참여가 자칫 새누리당 지지로 해석되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한국노총 한 산별연맹 관계자는 "근면위에 참여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정부에 들러리를 서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며 " 대선을 앞두고 정치방침을 둘러싼 갈등이 심한데, 노조법 개정 요구만 희석시키고 내부 단결을 훼손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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