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

1995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1995년 7월 검찰이 전두환의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하자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고, 헌법재판소는 5개월 만에 신속하게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전두환은 1심 법원에서 사형, 2심 법원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법도, 시민의 상식도 성공한 쿠데타 역시 처벌해야 한다는 데는 더 이상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사업장 노사관계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어떨까? 지난해 유성기업에서는 직장폐쇄 이후 사용자 지배개입에 의해 기업노조가 설립됐고, 올해 초 사용자는 기업노조가 교섭대표 지위를 확보하게 하기 위해 관리직 50여명을 기업노조에 가입시켰다. 2012년 1월27일 창조컨설팅과 회사의 회의 문서에 따르면 창조와 회사는 “관리직 사원의 조합 가입이 인위적이고 계획적인 형태를 띠지 않도록 2012년 1월 초부터 점진적인 가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게끔) 가입원서를 작성하게” 했다. 창조컨설팅과 유성기업 사측은 관리직 사원의 노조 가입이 이뤄지던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15일 “직급별 노조 가입여부를 달리할 경우의 시뮬레이션”까지 해보며 기업노조가 2012년 교섭대표 지위를 확보하도록 기획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 초까지 유성기업 사측이 기업노조를 내세워 금속노조의 교섭권을 찬탈하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쿠데타는 성공했고, 노조의 핵심 권리인 단체교섭권은 사측이 만든 기업노조에 넘어갔다. 전두환의 권력 찬탈이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 1980년 5월18일 광주학살, 1981년 2월25일 대통령간선제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듯이 그 축소판이 유성기업에서 2011년 5월18일 직장폐쇄와 용역깡패 투입, 지난해 7월~10월의 금속 간부에 대한 표적 징계, 올해 2월 교섭대표권 찬탈로 이어졌다.

전두환의 쿠데타와 유성기업의 행태는 놀랄 만치 닮아 있다. 군사반란/직장폐쇄→광주학살/금속조합원대량징계→시민투표권제한 개헌/금속교섭권찬탈, 규모와 형태만 달리할 뿐 둘은 너무나 비슷하다. 유성기업 사태를 사업장 노사관계에서 발생한 쿠데타라 불러도 과장이 아닌 이유다.

한편 지금까지 노동부는 시민적 상식과 달리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의 지배개입으로 만들어 진 노조라도 일단 설립된 후에는 노조법 2조4항의 각목에 명시적으로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면 설립을 취소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2조4항의 각목은 사용자 이익대표가 조합에 가입하는 경우,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 받는 경우,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노조가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1995년 당시 검찰이 형법 87조의 내란죄 규정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을 소극적으로 해석해 이미 통치자가 된 후에는 전두환의 과거 군사 쿠데타가 구체적으로 내란인지, 통치행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한 것과 비슷한 논리다.

노동부의 이런 해석에 따르면 기업노조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배경으로 교섭대표권을 확보했을 경우에도 이는 정당화 될 수 있다. 현재 ‘복수노조법’은 1년 간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면 교섭대표노조가 정해진 이후 2년간 교섭대표권을 보장한다고 돼 있을 뿐, 부당하게 확보된 교섭대표권을 어떻게 처리한다는 규정이 없다. 노조는 사용자가 공고한 교섭대표노조에 대해서 공고 5일간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유성기업의 사례처럼 사용자가 기업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만들 목적으로 관리자를 동원해 과반수를 확보하더라도 성공한 교섭대표권 찬탈은 인정한다는 셈이다.

1993년 문민정부 이래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는 역사적으로 단죄됐고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지내는 노동 현장에서 노동권은 시대를 거슬러 8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노조법의 허점을 극대화 시킨 ‘복수노조법’의 시행으로 그야말로 쿠데타 전성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사용자의 지배개입에 의해 만들어진 노조도 설립 신고를 하고, 조합원 과반수를 장악하면 대표교섭권을 확보해 민주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다.

이제 노동부는 응답해야 한다. 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있는가, 없는가?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