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교섭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이뤄지는 노조와 사용자 사이의 협상이다. 단체교섭이 마무리되면 단체협약이 체결된다. 따라서 단체협약이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사 간 합의”인 것이다. 노동법에 명시돼 있는 것을 단체협약에서 그대로 반복하거나 후퇴시킨다면 단체교섭이 따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법에서 정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는 조항을 단체협약에 넣으려는 시도 역시 노사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 단체교섭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단체교섭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

자본주의가 시작될 무렵을 돌아보자. 단체교섭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자본가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했다. 1860년 1월17일에 나온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아홉 살부터 열 살까지의 아이들이 새벽 2·3·4시에 불결한 잠자리에서 끌려나와 밤 10·11·12시까지 노동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고 썼다.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을 하루 24시간 전체에 걸쳐 점유하려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내재적 충동”이라고 <자본론>에 적었다. 노동자의 24시간을 지배하는 독재자로 군림하려 했던 것이 자본가였다. 당연히 노동일(勞動日), 즉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잇따랐다.

그 결과 '공장법'이라 불리는 노동법의 제정과 개정이 이뤄졌다. 일터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에 단체교섭이 이뤄졌고,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아동노동 금지 △하루 8시간 노동 △야간노동 제한 △주말 휴일 △연장근로 수당 △최저임금 △유급휴가 △병가(病暇) △노동안전 기준 △ 퇴직금과 연금 △실업보험 등의 성과는 노동운동이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것들이다. 노동조합을 통한 단체교섭이 없었다면, 일터에서의 자본가 독재는 지금도 계속됐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체교섭은 일터의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과정이었고, 단체협약은 민주주의의 기초인 ‘법의 지배’를 일터에 실현하는 수단이었다.

자본주의가 등장한 지 200년을 훨씬 넘었다. 마르크스가 죽은 지 140년이 지나간다. 하지만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합의이자 일터 민주주의의 토대인 단체협약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출장길에 구한 단체협약을 읽으면서 단체교섭·협약의 ABC가 무너져 내렸구나 싶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노동자들이 쟁취한 것이 아직은 설익은 풋사과에 불과한 것 같다. 두 나라 모두 기업별 교섭이 이뤄지고, 기업별 협약이 체결된다. 문제는 단체교섭이 기업별 수준에서 이뤄지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단체협약의 내용 자체다.

사업 운영·관리하는 회사 권한 인정?

“본 단체협약은 노동자들 사이에 작업 효율성과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사용자는 사용자가 정한 조건하에서 어떤 노동자라도 받아들이고 채용할 완전한 권한을 갖는다. (…) 노동조합은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작업 관련 규율을 강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 해당 노동자의 능력을 고려해 필요에 따라 노동자의 진급을 결정하는 것은 사용자의 권한이다. (…) 모든 노동자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할 권리를 갖는다. (…) 임금체계는 사용자의 정책에 따라 작업상의 지위·개인별 능력·책임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 경고장을 3번 받으면 고용계약을 끝낼 수 있다.”

“지각을 3번 할 경우, 정해진 곳에 주차하지 않은 경우, 관리자가 지시한 업무를 하지 않은 경우, 회사가 정한 월별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 (…) 경고장을 발부한다.”

“노조는 모든 영역에서, 특히 노동력의 수와 작업내용의 결정, 작업규정과 안전규칙의 제정, 노동력의 효율적 사용과 생산을 위한 수단·도구·재료·방법·과정·일정의 결정, 종업원에 대한 승진·감원·전직·방출·정직·징계 등 (…) 사업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회사의 권리를 인정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단체협약의 구성을 살펴보면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 보장 △노동자 경영참가 △회사 정보의 공개 등 노동자의 권리에 관련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임금과 노동조건 등 노동자의 이익에 관한 내용 역시 회사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들 일색이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단체교섭을 향한 투쟁이 인사권과 경영권에서 자행되는 자본가 독재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과 도전의 연속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 면에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단체협약은 자본가의 독재를 전적으로 용인하는 덫에 걸려 있다. 국제적으로 ‘전투적 노동운동’을 자랑했던 한국 노동운동의 단체협약은 어떠한가. 여러분 일터의 단체협약은 안녕하신가.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