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기자

"불법파견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인정과 사과가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두 명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널빤지 하나에 의지해 15만볼트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31일 오전 서울 효자동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긴급좌담회가 열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현대차 불법파견 대책 마련 긴급 좌담회'가 그것이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현대차 해법의 각론에서 차이를 드러냈지만 해결의 출발선이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권영국 "사내하청 신규채용안, 대법 판결 정면배치"


권영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두 가지 상징적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싸움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해법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리해고 싸움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한문에서, 비정규직 싸움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울산 송전철탑 위에서 벌이고 있다.

권 변호사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따르면 옛 파견법 직접고용 간주규정에 의해 사용기간이 2년 경과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사용사업주인 현대차에 직접고용된 것"이라며 "현대차가 2015년까지 3천명의 사내하청을 신규채용하겠다는 방안은 법원 판결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올해 8월 시행된 개정 파견법은 불법파견 즉시 고용의무를 부과하고 있어 현대차는 판결과 법률에 따라 8천명의 사내하청을 즉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절차나 노동조건은 노사 간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권 변호사는 최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대차에 최고 수준의 과태료를 반복적으로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당기순이익이 8조원에 이르는 현대차에 2천만원 수준의 법정 최고 과태료는 코끼리에게 비스킷을 가지고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권 변호사는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의 핵심은 불법 해소와 의무 이행"이라며 "교섭에서 밀고 당길 문제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태주 "직접생산공정 단계적 정규직화, 나머지는 차별개선"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 이른바 '최병승 케이스'인 직접 생산공정에 투입돼 핵심업무와 지원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합법도급과 기간제 등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으로 차별을 해소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요구는 강력하고 원칙적"이라고 비판한 박 교수는 "원·하청 노조 사이에 연대를 실현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1사1노조"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현대차의 기업노동시장은 정규직과 적법도급(사내하청), 직접고용 계약직으로 구성하되 비정규직의 영역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핵심업무와 지원업무는 원칙적으로 정규직이 맡고, 비생산업무와 외부지원업무는 합법도급의 영역으로, 임시적이고 일시적 업무에 한정해 직접고용 계약직을 두는 방안이다. 그는 현대차에 대해 "견제받지 않는 재벌권력"이라고 비판하면서 "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가를 보여 주는 가장 좋은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탁 "현대차 공정재배치는 시간끌기"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단계적 해법을 택한다면 직접제조 조립공정에서 일하는 7천명의 사내하청이 일차적 정규직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해결의 출발선은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이 연구위원은 "회사가 3천명 신규채용으로 노린 진짜 목적은 내년 주간연속 2교대제 실시를 앞두고 원·하청 간 공정재배치에 있다"며 "정규직-비정규직이 섞여 일하는 공정에서 비정규직을 한곳으로 몰아 합법도급으로 전환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공정재배치를 통해 시간을 끌고 불법파견 수를 줄이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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