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별노조운동은 10년이라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존 기업별노조 체제의 관행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별 교섭이 성숙하지 못하고, 산별노조운동이 지향했던 비정규직 조직화도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공동주최한 ‘한국·독일·프랑스 산별노조, 진단과 과제’ 국제 심포지엄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렸다. 우리보다 선진화된 산별교섭체계를 갖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은 최근 ‘산별교섭의 분권화·기업별교섭의 강화’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글로벌 경쟁체제 강화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산별교섭 약해지고 … 사업장교섭 강화되고


우리나라 산별노조들이 모델로 삼는 독일 산별교섭의 현주소는 어떨까. 독일의 노사관계는 이원적 구조를 띤다. 단체협약법에 의거해 단체교섭권을 갖는 노조와 경영조직법에 의거해 사업장 안에서 노동자의 전반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직장평의회가 존재한다. 노조와 직장평의회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중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기업별노조가 존재하지 않고 노조조직이 산업별로 조직된 점도 독일 노사관계의 특징이다. 독일 최대 노총인 독일노동조합총연맹 안에는 8개의 산별노조가 포함돼 있다. 17개에 달했던 산별노조는 통합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조합원수는 600만명이 넘는다. 전체 조합가입자의 80%가량을 포괄하고 있다.

토마스 하이페터 독일 뒤스부르크-에쎈대학교 노동과자격연구소 연구원은 “독일의 노조들도 조직화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최대 36%에 달했던 노조조직률은 18.5% 수준까지 떨어졌다. 총 고용인구 대비 단체교섭 적용률도 구서독 지역의 경우 98년 76%에서 2009년 65%로, 동서독 지역의 경우 같은 기간 63%에서 51%로 낮아졌다.

하이페터 연구원은 “독일 노조의 전통적인 조합원 모집방식에 위기가 도래했다”며 그 원인으로 △제조업 부문의 내부적 3차 산업화 △신산업(정보기술·녹색산업 등)의 등장 △민간서비스 부문의 구조적 취약성 △노동인구의 파편화(고학력 저임금)를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노조들은 △미조직 사업장 조직화 △새로운 형태의 사업장 차원 단체교섭 추진 △직장평의회 활성화를 돌파구로 제시했다.

실제 9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의 단체교섭 체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단체교섭 구조가 분권화되고, 개별 사업장에 적용되는 협약 내용이 유연화·차별화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사업장 교섭’이 증가하면서 산업 내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을 통일적으로 규율하던 광면협약모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사업장협약의 비중이 늘고 있다. 또한 개방조항의 도입을 통해 특정 사안에 대한 사업장협약의 규정력이 강화되고 있다. 더불어 사용자협의회는 단협의 적용을 받지 않는 회원사 가입을 주요한 교섭전략으로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독일 노동계에게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직장평의회 활성화와 사업장별 조합원 증가라는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동시에 산별협약 비중 축소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프랑스의 산별교섭 제도도 변화를 겪고 있다. 노조의 교섭력이 약화되고 총연맹 간 분열이 심화되면서 산별노조는 다시 기업별노조로 쪼개지고 있다.

장 마리 페르노 프랑스 파리경제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업별교섭이 노동자 3분의 1에 적용되고, 산별협약의 내용이 상실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기업별교섭을 실시하지 못하는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산별노조의 보호기능이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노조조직률 감소와 노조 간 분열이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35%에 육박했던 노조가입률은 2000년대 들어 10%대로 급락했고, 8개의 총연맹과 산하 산별연맹이 난립하면서 기업별노조에 큰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페르노 선임연구원은 “프랑스 노조들은 조직화와 협조, 노조 간 단결이라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제2 산별노조운동’ 성공하려면


기업별 교섭관행에 발목이 잡힌 우리나라 산별노조들은 최근 ‘제2의 산별노조운동’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난 10년간 ‘무늬만 산별교섭’이라도 이뤘으니, 이제부터는 ‘진짜 산별교섭’을 해 보자는 뜻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서구의 산별노조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거나, 과도하게 대산별노조를 고집하는 것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기업의 경우 기업지부를 인정하는 식으로 우리의 실정에 맞는 조직운영 방식을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소장은 이어 “산별교섭을 강제할 수단이 미흡한 상황에서 노조는 장기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중앙교섭 성사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역량 낭비이고, 부문·분과·지역·대각선 교섭 등 다양하고 유연한 교섭방식을 활성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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