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7월18일 창립한 <매일노동뉴스>의 전신 한국노동정책정보센터는 주요 일간지의 노동뉴스를 재편집해 팩스로 독자들에게 보냈다. 93년 5월18일부터는 뉴스를 책자형식으로 만들어 회원들에게 발송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93년 5월19일자 신문(192호)이 매일노동뉴스 창간호가 됐다.

매일노동뉴스는 자체 생산한 기사를 늘리면서 노동언론의 위상을 확립해 나갔다. 매일노동뉴스는 제2의 창간을 선언한 뒤 2007년 5월28일자(3661호)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특별판(베를리너 판형)을 만들고 있다. 사진 한 장 없는 표지로 출발한 매일노동뉴스 창간호와 창립 20주년 및 지령 5천호 기념 특별판.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노동과 노동운동의 궤적이 오롯이 담긴 매일노동뉴스 표지를 자료실에서 꺼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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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1993.5.19)

최근 새누리당과 합당을 선언한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 노동부장관 재직 시절 ‘경영인사권 개입을 위한 노조의 쟁의행위’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창간호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887호(1995.11.11)

95년 11월11일 민주노총이 출범했다. 정부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99년 11월에야 실립신고증을 내줬다.


1000호(1996.4.30)

지령 1천호. 복수노총 시대 노동운동의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지상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1164호(1996.12.27)

신한국당은 96년 12월26일 새벽 단독국회를 열어 정리해고제 도입 등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양대 노총은 총파업에 돌입했다. 정국이 소용돌이쳤다.


1431호(1998.2.7)

외환위기가 닥치자 노사정이 대타협을 했다. 전교조는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았고, 노조의 정치활동이 보장됐다. 그러나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가 도입되면서 상시 고용불안 시대로 접어들었다.


2000호(2000.5.23.)

지령 2천호. 16대 국회의원의 93%가 노동시간단축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2035호(2000.7.12)

외환위기 구조조정의 최대 희생자였던 금융노동자들. 정부는 98년 대규모 은행퇴출에 이어 2차 은행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금융노조는 2000년 7월11일 새벽 파업에 들어갔다.


2232호(2001.4.26)

경찰은 2001년 4월10일 노조가 농성 중이던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경력을 투입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국민의 정부’ 수뇌부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깡패’로 묘사됐다.


2440호(2002.2.26)

2002년 2월25일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에 반발한 발전·가스·철도노조가 동시에 파업돌입을 선언했다. 가스노조와 철도노조는 각각 하루, 나흘간 파업했다. 발전노조는 38일간의 장기파업을 벌였다.


2905호(2004.5.3)

2004년 5월1일 양대 노총과 북쪽의 조선직총은 평양에서 처음으로 노동절 행사를 개최했다.


2948호(2004.7.5)

2004년 7월부터 공공기관과 1천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40시간제가 시행됐다.


3000호(2004.9.15)

지령 3천호. 매일노동뉴스 기자들이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작성했다.


3485호(2006.9.4)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등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 대한 노사정 논의가 진통을 거듭했다. 결국 2006년 9월11일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은 3년 유예방안에 합의했다.


3508호(2006.10.11)

철도공사의 자회사 소속이던 KTX 여승무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006년 2월부터 장기파업을 벌였다. 승무원들의 사용자가 철도공사인지, 자회사인지에 대해 2012년 현재까지 재판이 진행 중이다.


3546호(2006.12.4)

2006년 11월30일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비정규직법 제·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3700호(2007.7.24)

2007년 7월 2년 이상 기간제 정규직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정규직법이 시행됐다. 정규직화 회피를 위한 외주화 대상이 된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들은 매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4000호(2008.10.28)

지령 4천호.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산업 곳곳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4187호(2009.7.28)

2009년 4월 쌍용차는 대규모 감원계획을 발표했다. 3천여명의 노동자가 길거리로 나앉았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평택공장에서 5월부터 8월까지 77일에 걸쳐 옥쇄파업을 벌였다.


4292호(2009.12.23)

2009년 1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두고 논란이 불붙었다. 결국 2010년 새해 벽두 한나라당 주도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4422호(2010.7.2)

2010년 7월1일 전임자임금 지급이 금지되고 유급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가 시행됐다. 산업현장에서 타임오프 한도를 놓고 잇따라 충돌이 빚어졌다.


4672호(2011.7.1)

2011년 7월1일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노조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한국노총 지도부의 표정이 심각하다.


4722호(2011.9.14)

노동자들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2011년 9월3일 향년 82세로 소천했다. 표지 사진은 같은해 9월7일 고인의 장례식 모습이다.


4764호(2011.11.14)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인 지 87일 만에 땅에 내려왔다.


5000호(2012.10.24)

지령 5천호.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울산공장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요 요구는 현대차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다.


5003호(2012.10.29)
 
창립 20주년 및 지령 5천호 기념 특별판. 대선후보 노동공약 평가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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