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노동운동 가운데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가 일제식민지로 전락하기 300년도 전에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됐다. 우리에겐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에서 일하다가 제주도로 표류해 십수 년을 조선에 구금당했다. 일본으로의 탈출에 성공한 하멜은 동인도회사 본부가 있던 바타비아를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바타비아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다.

반제(反帝) 무장투쟁과 민중항쟁의 승리

식민지 조선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열강의 힘으로 일본으로부터 해방됐지만 식민지 인도네시아는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했다. 태평양전쟁 때 인도네시아는 일본군에 점령됐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하자, 미국과 영국을 등에 업은 네덜란드군이 인도네시아로 돌아왔다. 하지만 식민지 시절부터 무장투쟁을 이끌어 온 수카르노와 하타를 중심으로 독립전쟁이 시작됐고,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으로 무기력했던 네덜란드는 죽창을 들고 덤벼드는 인도네시아 인민들의 투쟁에 밀려 독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50년대 중반 인도네시아의 휴양도시 반둥에서 미국 추종도 아니고 소련 추종도 아닌 비동맹운동 회의가 출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도네시아 인민들이 동남아시아 반제투쟁의 선봉에 섰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박정희의 군사파시즘 체제가 공고히 되던 60년대 후반 인도네시아에서는 미국을 등에 업은 수하르토가 군사쿠데타에 성공한다. 그때부터 두 나라의 군사독재체제는 미국의 후견 아래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국노총이 박정희 독재정권의 꼭두각시가 됐던 것처럼 인도네시아 노동운동도 어용노총만이 허용되는 굴종의 시대를 겪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박정희에 이은 전두환 정권이 민중항쟁에 굴복한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운동의 시민권이 숨통을 틔웠고, 인도네시아는 그로부터 십여 년 후인 98년 5월 민중항쟁으로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진 다음에야 노동운동이 활력을 얻게 됐다. 이렇듯 두 나라는 제국주의 식민지·군사독재·민주화라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함과 동시에 노동운동의 활성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활력, 그리고 한계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3천만명이 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천500달러에 달한다. 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4천만명에 이르고, 그중 노동조합에 속한 조직노동자는 340만명으로 (공식 부문의) 조직률은 8.7%로 추정된다. 10개가 넘는 노총이 난립해 있으나 3개 노총(KSPI·KSBSI·KSPSI)이 실질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체계는 기업별노조가 주축을 이루고, 산별연맹을 통해 노총에 연계되는 구조다. 산별연맹과 노총을 중심으로 집회와 시위가 활발하다. 현장 간부들의 활동도 활성화돼 있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 비교할 때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이 때문에 국제노조운동은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연대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제 노동기준의 근간을 이루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8개를 모두 비준한 나라는 아시아에 단 2개 존재한다. 인도네시아는 민주화를 이루면서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ILO 핵심협약 8개를 모두 비준했다. 두 번째 나라는 캄보디아다. 물론 비준과 이행은 다른 문제지만, 이런 인연도 작용해 ILO는 자카르타에 사무실을 설치해 수십 명의 상근자를 두고 있다.

98년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크게 활성화됐지만 동시에 심각한 도전에 부딪혀 있다. 첫째, 기업별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동조합 조직과 노사관계의 구조가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단체교섭에서 상급단체의 활동, 그리고 노동자의 의식에 이르기까지 기업별 한계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둘째, 군사독재 시절에는 단일 노총이었다가 민주화 이후 복수 노총이 되었는데, 노총들이 자체 분열하거나 새 노총이 생기면서 노동운동 전선의 분열이 심해지고 있다. 단위 노조의 수준은 비슷비슷한데 상급단체들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현장과 연맹·노총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셋째, 노동운동의 노선과 전략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 이 문제는 기업별노조라는 조직체계와 얽히면서 노동운동을 ‘전투적 경제주의’로 경도시키고 있다.

공통된 역사적 경험 때문일까.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기질이나 노동운동 분위기가 우리와 비슷한 게 많다. 봉착한 도전들도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두 나라 노동운동의 교류와 협력은 국내 노동운동은 물론 아시아 노동운동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노동운동이 비관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아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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