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정리해고는 기본적으로 일감 부족 및 경영적자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이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경총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른바 개혁진영의 경제학자라는 김기원 방통대 교수의 말이다. 재벌개혁론으로 유명한 김 교수는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가 청문회에서 다뤄지고, 기획부도·회계조작에 의한 부당 정리해고 주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자 한 언론에 이렇게 썼다.

사실 보수·개혁에 상관없이 경제학자들은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기업의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고, 해고자들이 지나친 경제난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부조하는 것이 중요하단 것이다. 이른바 유연안정성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무엇보다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2010년·2011년 정리해고자는 경제위기 시기였던 2009년보다 훨씬 많았다. 2009년 7만6천명이던 정리해고자는 2010년 8만2천명, 2011년 10만2천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2010년·2011년 우리나라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은 각각 15%·12%로 경제위기 이전인 2007년 9%보다 높았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영업이익률 역시 경제위기 이후 늘었다. 다시 말해 일감이 부족해서, 경영적자가 늘어나서 정리해고가 많아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실의 정리해고는 김 교수의 주장과 달리 일감 부족이나 경영적자로 인한 기업의 수동적 선택이 아니라 더 많은 경제적인 또는 정치적인 이익을 위한 공격적 선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가지 예를 보자.

2011년 7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한 반도체 패키징 기업 시그네틱스는 수익률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버금가는 기업이었다. STS반도체와 같은 경쟁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수익률이 높았다. 게다가 일감이 늘어나 사람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던 기업이었다. 그런데도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사측은 안산공장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며 안산공장 수익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사유를 밝혔는데,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안산공장 제품들이 수익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삼성전자에 납품하기 위해 꼭 생산해야 하지만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안산에서 생산하고, 수익성이 높은 제품은 파주공장에서 생산하는 전략을 썼기 때문이었다. 시그네틱스는 정리해고 이후 안산공장을 법인 분리하고, 소사장제를 도입해 공장 전체를 정규직 없는 공장으로 만들었다.

지난 15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은 KEC 정리해고도 비슷했다. KEC는 2011년 말 3년간 누적적자액이 800억원에 달한다며 80여명을 정리해고했다. 하지만 내부 비밀문서를 통해 밝혀진 바는 정리해고는 누적적자 때문이 아니라 경영진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관리직들의 연봉인상 때문이었다. 중노위와 법원 모두 이를 인정했다. KEC 사측은 심지어 ‘경영상 이유’를 만들기 위해 이전에 잘못된 투자로 놀고 있던 기계들을 손익계산서상의 손실로 처리했다. 자산감액 재고폐기 손실 등 장부상에만 기록되는 각종 손실을 할 수 있는 만큼 크게 잡아 기록했다. 정리해고를 위해 기업 재무구조가 엉망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해고는 민주노조 파괴라는 정치적 목적으로도 이용된다. 2010년 초 발레오만도 사측은 직장폐쇄·용역깡패 투입·노조간부 징계해고를 단행했다. 사측이 당시 밝힌 이유는 ‘경영상 이유’였다. 세계 경제위기로 공장이 존폐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노조의 단체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레오만도는 2010년 창사 이래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 2011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감이 없어 공장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초과근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상신브레이크·KEC·유성기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사측은 경영상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최근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정부와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업체, 사측이 공모한 민주노조 파괴전략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영상 이유로 포장된 정치적 목적의 노조파괴와 해고였다. 먹튀·기획부도·회계부과, 정부의 노조 파괴전략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된 쌍용자동차 사태는 이미 본 칼럼에서 수차례 썼으니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 교수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 실제 벌어지는 노동권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둔감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들의 경제민주화라는 담론에는 아예 노동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보니 정리해고는 오직 기업의 관점에서, 그것도 현실의 실제 상황이 아니라 명분으로만 존재하는 ‘경영상 이유’를 가지고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런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다. 노동을 통치하기 위한 지적 사기에 가깝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가 된 지금 정말 노동자를 위한, 다수 시민을 위한 경제학을 세워 내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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