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추석은 오곡이 무르익고, 과실이 풍성한 시기다. 우리 민족은 풍작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차례를 지냈다. 추석 때라야 식구들도 다 모인다. 도시로 나간 형제들은 먼 길을 마다않고 고향집에 찾아온다. 온 가족이 모여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는 명절이기에 교통체증도 참을 수 있다.

배는 부르고, 깨알 같은 대화가 오고가는 추석. 이런 풍경은 추억 속에나 있을 법한 일이 되고 있다. 추석이 다가와도 팍팍해진 노동자·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서민의 장바구니 물가가 대폭 올랐다. 추석 이후에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3%포인트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 곡물가가 올랐고, 태풍피해를 본 농가들이 많아 농산물 가격이 인상된 탓이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조차 마련하지 못해 한 숨만 쉬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업들의 돈가뭄도 해갈되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국내 31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여금 지급기업은 76.0%였고, 1인당 평균 93만4천원이었다. 대기업은 124만6천원, 중소기업은 86만6천원이었다. 지난해 대비 상여금은 2%대의 인상률을 보였다. 물가는 널뛰기를 하는데 상여금 인상은 게걸음이다. 상여금이라도 주는 기업은 그나마 낫다. 24%의 기업은 상여금조차 지급할 형편이 안 된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다 내수경기마저 찬바람만 불고 있어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게는 우울한 추석이 되고 있는 셈이다.

경총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이번 추석에 평균 4.3일 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휴무일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판촉사원 노동자들은 명절에 고향에 갈 수 없다. 당초 백화점들은 올해 추석 휴무일을 이틀간으로 정했는데 이것이 뒤집히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김포공항점이 하루 휴무를 결정하면서 업계가 이를 앞 다퉈 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상여금은 고사하고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도 있다. 이들에겐 명절은 마냥 괴롭기만 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금체불액은 7천915억을 넘었고, 피해보고 있는 노동자만 19만2천445명에 달한다. 1인당 평균 400만원의 임금이 체불됐다. 체불이 장기화된 건설노동자들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현장에서 일한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임금을 받지 못했는데 원청인 현대건설은 체불임금의 65%만 주겠다며 버티고 있다. 체불했음에도 처벌받는 사업주가 드물기에 이런 생떼가 가능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체불사업주는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할 수 있음에도 구속된 사업주는 2010년엔 3명, 2011년엔 13명에 불과하다. 올해 체불금액이 지난해 대비 8.3% 늘었음에도 지난 8월 기준 구속사업주는 12명이고, 벌금형도 대다수가 100만원 이하다. 지난해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고용노동부는 체불사업주 명단을 공개할 수 있음에도 감감무소식이다.

경남 김해시 본산공단에 위치한 철강가공업체 경용중공업 노동자들은 명절을 앞두고 날벼락을 맞았다. 회사측이 10월31일자로 해고한다는 예고통지서를 최근 보냈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경기악화로 올해 말에 폐업할 계획이라 해고한다고 하지만 석연치가 않다. 회사측이 거래업체에 보낸 공문을 보면 ‘노조설립과 민주노총 가입으로 발주를 중단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원청인 현대스틸산업에도 '노조 설립으로 납기일을 맞출 수 없다'며 입찰에 불참하겠다고 통보했다. 노조는 회사측이 노조설립을 핑계로 폐업하고 공장을 소사장제로 운영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강행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정리해고의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통보를 받은 경용중공업 노동자들은 최악의 추석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추석이 서러운 노동자·서민들이 늘어나는데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소식은 들리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져야 한다. 정권 말기여서 복지부동하고, 대통령 선거에만 쏠려 민생과제를 뒷전으로 밀어둬선 안 된다. 적어도 추석이 악몽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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