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25일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재고시하면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대법원 판결을 반영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은 최근 임금 관련 판결에서 정기상여금뿐만 아니라 복리후생 관련 수당도 통상임금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노동부는 이마저도 반영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27일 "평균임금과 통상임금의 산정기준이 되는 평균임금 산정특례와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최근 재고시했다"고 밝혔다. 대통령령인 훈령·예규 등의 발령 및 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정부가 고시하는 각종 훈령·예규는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3년마다 재검토하고 이를 다시 고시해야 한다. 노동부는 그러나 3년 전 내용을 그대로 재고시해 대법원 판결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원은 최근 통상임금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2월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 휴가비·귀성여비·가족수당·조직관리수당·조사연구수당·개인연금보험료·직장단체보험료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고, 인천지법은 올해 3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고 봤다. 특히 4월에는 대법원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해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지급조건·금액·시기가 정해져 있거나 노동자에게 관례적으로 지급해 사회통념상 당연히 지급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기존 행정해석을 유지했다. 또 법원에서 인정된 휴가비·귀성여비·가족수당과 같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각종 수당도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노동법학자들은 "노동부가 기존 행정해석을 고집하는 것은 법원의 판례 경향에 배치되고, 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불러올 뿐"이라고 우려했다. 법원이 통상임금과 관련한 판례 경향을 바꾸는 것은 임금을 포함한 각종 수당이 명칭이나 성격과 상관없이 모두 '노동의 대가'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최은배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법원은 95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임금을 노동의 대가와 생활보조적 수당으로 구분하는 임금이분법설을 폐기한 바 있다"며 "이에 따라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모든 금품은 그 명칭이나 성격에 상관없이 근로의 대가이면 모두 임금으로 보고 있고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법원의 판결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정도로 쌓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해석 변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과 연차유급수당 등 각종 시간외수당의 기준이 되는 임금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원 판결로 통상임금 범위와 관련한 논란이 불거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법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할 정도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각종 수당이 덩달아 올라 산업현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섣불리 변경할 경우 혼란을 불러올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법원에서는 이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판결했고 소송에 승리한 노동자는 그만큼의 시간외수당을 더 받게 됐다”며 “노동부가 잘못된 행정해석을 바꾸지 않으면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수의 노동자가 임금에 관한 자기권리를 보호·보장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차라리 노동부 행정해석을 폐기하고 판례를 따르라고 권고하는 것이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더 보탬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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