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위원장이 다산콜센터 상담원들에게 노조가입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배혜정 기자

지난 14일 오후 5시께 동대문 풍물시장 근처 한 사무실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김진억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조 위원장으로부터 1시간 가량 노조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나눠 준 노조가입서를 작성했다. 이들이 나가자 이번에는 10여명의 상담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사람이 많다 보니 질문도 많았다. “노조에 가입했다고 불이익을 당하진 않겠죠?”, “조합원 명단이 유출되진 않겠죠?”, “정말 서울시가 직접고용을 할까요?”, “회사가 서울시랑 재계약을 못하면 우리도 잘린다고 하던데….”

서울시가 운영하는 120다산콜센터 상담원들인 이들은 며칠 전 생긴 노동조합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모였다. 김영아 다산콜센터지부장은 이들에게 “서울시가 우리를 직접고용할 수 있으냐, 없느냐는 얼마나 많은 상담원들이 함께하느냐가 관건”이라며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3년차 상담원인 최아무개씨는 “(노조 결성이) 다산콜센터에서 처음 시도되는 일이라고 들었는데,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며 눈을 반짝였다. 김아무개씨는 “서울시가 우리를 직접고용하면 아무래도 근무환경이 나아지지 않겠냐”며 노조가입서에 이름을 적었다.

희망연대노조와 다산콜센터지부는 지난 12일 노조 결성 소식을 알린 뒤 매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퇴근하는 상담원들을 상대로 노조가입 선전전과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소문은 금방 돌았고, 대여섯 명씩 짝을 지은 상담원들이 꾸준히 노조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다.

콜수 압박에 업무테스트 시달려 … 시간외수당은 ‘언감생심’

서울시의 ‘얼굴’로 상징되는 다산콜센터 상담원들이 노조를 만들어 서울시에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중인 2007년 만들어진 다산콜센터는 현재 효성ITX·KTCS·MPC 등 3개 민간업체가 운영한다. 오 전 시장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험 있는 외주업체에 위탁을 맡기겠다"고 했다. 설립 초기 2개 업체(효성ITX·KTCS)가 시와 16개 산하기관에 관한 업무를 맡았고, 3년 전부터 25개 자치구 상담업무가 통합되면서 MPC가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3개 위탁업체에 속한 500명(효성 168명·KTCS 158명·MPC 174명)의 상담원들은 24시간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민원, 수도·교통·수화상담·외국어 상담업무를 맡고 있다.

문제는 서울시가 일·월·분기별 평가를 바탕으로 업체 순위를 매겨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면서 업체 간 과도한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아 지부장은 “생산성·업무테스트·QA(상담수준) 등을 종합해 서울시가 업체별로 평가를 한다”며 “결과에 따라 1등을 한 업체에는 인센티브가 주어지고, 3등을 한 업체에는 페널티가 주어지다 보니 과잉경쟁이 이뤄지고, 소속 상담원들을 쥐어짜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체 간 경쟁은 고스란히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진다. 상담원들은 개인평가에 따라 S등급(상위 10%)부터 A~D 등급으로 나뉘어 인센티브를 지급받는다. 자연히 콜(민원전화)수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상담원 박아무개씨는 "상담이 길어져 1시간에 서너 콜밖에 못 받을 때도 있는데, 팀장으로부터 ‘이 시간에 뭐했냐’는 질책을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상담원들이 콜수를 늘리기 위해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고 끊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상담원 이아무개씨는 “콜이 몰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는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물 마시는 것까지 조심스러워진다”고 말했다. 빈자리가 생기면 곧바로 ‘이석하지 말라’는 팀장의 (메신저) 쪽지가 날라온다. 흡연자인 한 상담원은 퇴근 뒤 담배를 몰아피는 게 습관이 됐다.

상담원들은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바로 전에 오는 ‘막콜’에 대한 공포가 있다고 했다. ‘하소연성’ 콜이라도 들어오는 경우에는 30분에서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콜이 길어질수록 상담원들의 점심시간은 줄어들고, 퇴근시간은 늦어진다.

하루 8시간의 업무시간이 끝났다고 ‘칼퇴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 동안 받은 콜을 정리하는 ‘후처리’를 해야 한다. 손이 빠른 상담원들은 콜이 끝나는 대로 후처리가 가능하지만 손이 느리거나 업무 적응을 하지 못한 신입 상담원들은 일과 후 한두 시간 남아서 후처리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업무테스트도 상담원들에게는 고역이다. 테스트에 앞서 1주일간 업무가 끝난 뒤 교육을 받는다. 한 상담원은 “고3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담원들이 진짜 힘든 건 테스트가 끝난 뒤다. 틀린 문제를 A4 용지에 재정리해서 내야 한다. 중·고등학교 때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빽빽이’인 셈이다. 성적이 나쁜 상담원들은 따로 모여 3일간 ‘부진자(하위자) 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받는 월급은 한 달에 150만~170만원 안팎이다. 업무 외에 이뤄지는 모든 노동에 대해서는 시간외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상담원들은 아무 수당도 받지 못한다. ‘무임금 고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상담원 심아무개씨는 “수당은커녕 정해진 연차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며 “서울시가 운영한다고 하길래 다른 민간콜센터와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더 안 좋으면 안 좋았지 나은 점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서울시의 얼굴은 서울시가 직접고용해야”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위원장은 “서울시와 3개 업체가 맺은 계약보다 적은 인원이 뽑히고 있고, 임금도 계약서상의 80%밖에 지급이 안 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위탁업체들의 중간착취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절할 수 있는 것이 위탁이 아닌 서울시의 직접고용이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가 상담원들을 직접고용하면 인원도 충원할 수 있고 노동강도도 지금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5월 서울시 비정규 노동자 1천54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 이후 현재 1단계 전환대상에서 제외된 일시업무 실태를 재조사하고 있다”며 “다음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발표되는 2단계 비정규직 대책에서 다산콜센터 상담원들에 대한 직접고용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2년차 상담원인 김아무개씨는 “상담원들이 ‘서울시의 얼굴’이란 자긍심이라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처음에는 나도 자긍심을 갖고 일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용역일 뿐이다. 어쩔 때는 ‘난 용역이니까 내 발언에 책임지지 않아도 상관없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연차·생리휴가 그딴 거 기대도 안 한다. 제발 내가 서울시의 업무를 책임지는 ‘서울시의 얼굴’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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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아
다산콜센터지부장
[인터뷰] 김영아 다산콜센터지부장

“박원순 시장님은 상담원들의 고충을 알까요?”

“자리 옮겨졌어요. 팀장 옆으로. 하하.”

지난 14일 김영아(40·사진)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장을 만나고 온 뒤 일주일 만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팀장 옆으로 자리가 옮겨졌다”고 웃었다.

“날 감시하겠다는 건데, 나도 팀장 감시하면 되죠 뭐. 근데 자리 옮기니까 내 옆에 상담원들이 안 오네요.”

다산콜센터 설립 5년 만에 설립된 노조에 대해 "업체 쪽도 멘붕"이라고 김 지부장은 귀띔했다. 실제 노조 설립 이후 다산콜센터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업무시간 외 이뤄졌던 ‘부진자 교육’이 사라졌고, ‘그동안 못 받은 시간외수당을 지급할 테니 노조에 가입하지 마라’는 얘기가 나돈다. 김 지부장은 “노조가 강해지면 더 많은 권리보장을 해 줘야 하니 사전에 막자는 의미 아니겠냐”며 “노조의 힘을 느꼈는지 상담원들의 반응은 더 좋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이 노조설립을 결심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을 목격하면서부터다.

“어느 날 코피가 터진 동료가 휴지를 코에 쑤셔 박고 휴지의 한쪽 끝을 입에 문 채 문자 상담을 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또 민원인으로부터 폭언을 들은 한 상담원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입으로는 ‘정성을 다하는 120다산콜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하는데, 그걸 보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콜수 경쟁에 내몰리는 데다, 무조건 참아야 하는 상담원들의 대처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힘들어 그만두거나, 불만 있어도 참거나, 아니면 ‘돈이라도 더 벌자’며 악에 받쳐 경쟁하거나….

하지만 김 지부장은 노조에서 답을 찾았다. 동료들과 함께 노조결성에 의기투합한 그는 희망연대노조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노조를 만들자 예상했던 대로 회사측의 반발이 거셌다. 그는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힘들다고 그러냐”, “지각이 잦다”, “근무평가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제가 업체 쪽에 그랬어요. 어쩜 그렇게 다른 회사들이랑 똑같냐고. 좀 창의적일 수 없냐고요. 하하.”

김 지부장의 요구사항은 간명하다. 노동환경 개선과 서울시의 직접고용이다.

“다산콜센터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건 밤낮없이 헤드폰 끼고 온갖 민원을 처리하는 상담원들이잖아요. 그러면 서울시가 직접고용을 해야죠. 박원순 시장님은 상담원들이 겪고 있는 고충을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다산콜센터의 대시민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서울시가 직접고용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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