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르노삼성이 무제한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한 지 한 달여 만에 800여명의 노동자가 공장을 떠났다. 르노삼성 사측은 여전히 희망퇴직 인원이 적다며 추가로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 2009년 쌍용차에서 2천600여명의 노동자가 구조조정된 이후 3년 만에 다시 완성차업체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있다.

르노삼성이 구조조정의 이유로 밝히고 있는 것은 판매 급감과 적자로 인한 경영위기다. 르노삼성의 판매량은 올해 7월까지 9만4천대로 14만2천대를 팔았던 전년 동기 대비 34% 줄었다. 르노삼성은 가장 많은 차를 팔았던 2010년에 27만5천대의 차를 판매했는데, 올해 판매량은 15만대 내외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수준의 노동강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15만대 내외를 생산하겠다고 한다면 2천900명의 생산직 노동자 중 1천400여명 이상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2007년 수준으로 노동강도를 다소 완화한다면 1천여명을 줄여야 한다. 현재까지 300여명이 명예퇴직을 했으니 최소 700명, 최대 1천100여명 규모의 추가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가 조만간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르노삼성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가장 큰 이유는 르노닛산 그룹의 수탈이다. 르노삼성의 영업이익률은 매출원가에서 르노닛산 부품구매비 비중이 높아지는 것에 비례해 낮아졌다. 2008년부터 치솟기 시작한 르노닛산 부품비는 전체 매출원가의 25% 내외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2007년까지 르노닛산 부품의 원가비중은 15% 내외였다. 고환율 상황에서도 르노에서 전략적으로 르노삼성이 자신을 통해 부품을 구매하도록 하면서 르노삼성은 엄청난 불이익을 겪었다. 필자가 추정해 본 바로는 만약 2011년에 2007년 수준의 부품거래만 했더라도 르노삼성은 2천억원 적자가 아니라 3천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르노닛산그룹은 현재 이 모든 책임을 르노삼성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생산감소에 따라 인원을 줄여 생산성은 유지한 채 15만대 내외의 생산에 적합한 인력만 최소 비용으로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2009년 이후 4년간 르노와 닛산이 뽑아 간 돈을 르노삼성의 비용절감으로 채워 넣어야만 르노삼성을 살려 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 르노삼성 경영진이 추진 중인 ‘리바이벌 2012’ 계획은 바로 이러한 책임전가 프로그램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르노삼성에는 아직 제대로 된 민주노조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설립된 금속노조 르노삼성지회는 조합원이 전체 가입대상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90%의 노동자들은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들의 조직인 사원대표자위원회(사대위)에 소속돼 있다. 최근 이 사대위는 총회를 통해 노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했다. 하지만 이 노조가 회사와 대립해 구조조정을 막을 것 같지는 않다. 갑자기 조직을 노조로 변경한 이유도 현재 금속노조 르노삼성지회가 가지고 있는 교섭대표권을 구조조정을 앞두고 빼앗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르노삼성지회는 1년간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해 올해 9월 말이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상실한다.

사실 르노삼성 위기의 또 다른 주체 중 하나는 바로 근로자대표를 자임하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사대위라고 할 수도 있다. 르노로 인수된 2001년부터 10년간 사대위는 회사측의 경영자료와 장기계획에 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조직이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조직된 금속노조 르노삼성지회는 출범과 동시에 르노의 자본유출과 르노삼성의 장기발전 전망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명하며 투쟁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사대위는 오히려 르노삼성지회의 조직화를 방해하는 데 골몰했다.

단적인 예는 올해 초 언론을 통해 중국에서 QM5를 생산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다. 현재 QM5는 부산공장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차종이다. 보통 다른 완성차 회사에서 이런 언론보도가 나왔으면 난리가 난다. 노동조합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한국 공장생산 물량을 보장받는 협약을 시도했을 사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르노삼성의 노동자들을 대표한다는 조직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르노의 계획은 2014년부터 르노삼성을 일본 닛산공장의 하청공장 정도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카를로스 곤 회장이 한국에 와 발표한 내용도 닛산 로그를 위탁생산하겠다는 것이 전부였다. 르노삼성의 중장기적 발전전망을 고민하고 제시할 주체는 결국 금속노조뿐이다. 르노삼성의 경영진들은 사실상 르노그룹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이번이 끝이 아닐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노조 없이는 르노삼성 노동자들의 미래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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