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업재해 실태는 하루에 6명이 사망하고 256명이 산재를 당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산재사고 사망만인율로 비교하면 영국의 14배나 된다. 공식통계가 그렇다는 얘기다. 은폐되는 산재가 적지 않다. 공공부문에서도 직업성 암·근골격계 질환·감정노동에 기인한 정신과적 질환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조 차원의 문제제기나 활동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공노동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건강권을 확보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매일노동뉴스와 노동부유관기관노조는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장애인개발원 이룸센터에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건강권 챙기기'를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 정기훈 기자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한창현 공인노무사(토마토 노무법인)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산업보건국장이 토론자로 참여하고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공공연맹·공기업연맹·공공운수노조(연맹)이 후원했다. 콘서트 내용을 지면에 중계한다.

은폐되는 공공노동자 산재

사회 : 공공부문의 경우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묶여 단위노조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임금과 고용 외에 다른 노조활동에 대한 새로운 개척이 필요하다. 흔히 발생하는 산재를 사고로 보는 시각을 넘어 건강권 확대로 의식을 확장시키는 계기로 만들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공공노동자의 산재 실태는 어떠한가.

조기홍 : 공공노동자 산재실태에 대해 정확한 통계나 자료가 없다. 이에 반해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불안, 직무스트레스 강화 등으로 공공노동자의 건강권은 매우 위협받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도 공공부문 산업재해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회 : 공공노동자 산재실태와 관련한 통계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기홍 : 사무직의 경우 산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생산직 등 현장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는 것만 산재로 생각한다. 노조도 산업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어렵다고 외면하고, 다른 현안에 비해 조합원의 관심사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강권 문제를 소홀히 취급한다.

유성규 : 공공노동자의 경우 산재 신청조차 꺼려해 많은 산재가 은폐되고 있을 것이다. 동료가 죽으면 죽게 된 원인에 대해 물어야 한다. 동료들에게 발생하는 사고와 질병에 대해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사례를 정리해 누적하면 통계가 되고 사전적인 조치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사회 : 노동자의 건강권은 중요한 문제임에도 노동자들과 노조가 무관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권동희 : 임금이나 고용은 공통적인 문제인 데 반해 산재질환은 개인의 문제라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사고가 나거나 병이 생겨야 문제가 보인다. 노조간부들이 잘 모른다는 것도 원인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노조에서 산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는 산재 승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장시간 노동과 민원폭력에 시달리는 공공노동자

사회 : 공공노동자에게 발생하는 산재유형 중 최근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이 있나.

조기홍 : 크게 세 가지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 오랜 시간 반복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이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민원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질환이 상당히 많다. '밤길 조심해라', '칼침 맞는다'와 같은 폭언에도 시달린다. 인터넷에 민원을 제기할 경우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부당하게 인사조치를 받는다. 정신질환을 많이 앓고 있다. 불이익을 받을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회 : 최근 과로와 스트레스성 질환에 기인한 질병이 다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창현 : 어려운 문제다. 산업구조와 사회의 철학을 바꿔야 한다. IMF 이후 공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더 심화되고 있다. 연봉제와 성과급 등 경쟁제체 도입에 따른 노동환경 변화는 필연적으로 직무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노조는 이에 대해 관심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유성규 : 철밥통이라는 말은 과거 얘기다. 노조는 임금을 올리고 구조조정에 맞선 큰 싸움만 고민하고 있다. 반면에 조합원이 직접 느끼는 것은 휴게시간 확대와 휴가기간 연장, 사내식당 조미료와 같은 사소한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도 거시적인 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회 : 과로 스트레스성 질환을 산재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제도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한창현 : 노동부 고시가 법률보다 더 엄격하다. 과로 스트레스성 질환은 뇌심혈관질환이 대표적인데, 노동부 고시로 뇌심혈관질환에 대해 산재 인정을 받는 것은 로또만큼 힘들다. 이는 업무상질병에 해당되는데, '질판위'로 불리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승인을 결정한다. 당사자에게는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중요한 질병임에도 질판위는 이를 5분 만에 판정한다. 그러한 잘못된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질판위가 근로복지공단 산하에 있는 것도 문제다. 독립적인 기관으로 만들어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유성규 : 조사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노동위원회의 경우 법률상 당사자가 자기의 해고가 왜 부당한지 소명할 기회를 주는데 산재의 경우 당사자가 충분히 주장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 조사담당자가 5분의 심리 과정에서 당사자를 대리해야 하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누락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동희 : 조사관이 1인당 맡은 사건수가 상당하다. 충실하게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예산을 늘려 조사관의 양과 질을 높여야 한다.

사회 : 과거 한 공공기관에서 20여명의 노동자들에게 암이 발병했지만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직업성 암의 경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나.

조기홍 : 최근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태 등 직업성 암 발생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업성 암 인정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또 주로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노출된 경우에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노동자의 직업성 암에 대한 인정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권동희 : 직업성 암이 법원에서 소송을 통해 산재로 인정되는 것도 매우 어려워졌다. 과로·스트레스 관련 간암의 경우 과거에는 업무관련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다수 나왔으나 최근에는 이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창현 : 암은 이미 생활에 들어온 질병이다. 국민 중 4명이 1명으로 암으로 죽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다. 100% 순수한 개인질병은 없다. 암을 한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비정상적인 사회다.

노조, 노동자 건강권 확대투쟁 나서야

사회 : 산재인정 관련기준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권동희 : 아프면 일단 직업병을 의심해야 한다. 20년 전 일하다 다쳐 현재까지 치료를 받고 있어도 산재다. 되든 안 되든 무조건 두들겨 봐야 한다. 그래야 직업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삼성 백혈병 유가족들도 그렇게 싸우고 있다.

조기홍 : 무엇보다 산재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바꿔야 한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이 발생했다면 우선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가 산재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사회 : 공공노동자들의 산재 예방을 위해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나.

조기홍 : 그간 산업안전보건 활동은 제조업 위주로 진행돼 공공노동자들이 안전보건 제도에서 방치돼 왔다. 비제조업 분야에 대한 법·제도 개선과 함께 노조에 안전보건 전담부서를 설치해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유성규 : 조합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자체 기금으로 예산을 확보해 보상하는 제도를 만드는 등 기존의 틀을 넘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보자. 조합원 산재교육 실시와 단협 변경 등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된다.

한창현 : 직무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줄 알면서도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말로만 중요하다고 하지 말고 과거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노조가 나서서 노동자 건강권 확대투쟁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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