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에서 밤샘근무가 사라진다. 국내 완성차업체 중 맏형인 현대자동차가 그 물꼬를 텄다. 현대차 노사는 내년 3월4일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노사는 현행 근무시간보다 3시간 줄어들더라도 종전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했다. 라인별로 시간당 생산대수(UPH) 향상과 추가 작업시간을 통해 이를 가능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종전 주간조 10시간, 야간조 10시간의 근무형태가 ‘8시간+9시간’으로 바뀌더라도 생산량이 유지되는 조건이다. 이를 위해 회사는 4천6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하기로 했다. UPH 향상에 필요한 추가인력은 내년 3월에 노사가 협의하기로 했다. UPH를 향상시킬 경우 시간당 60대를 생산하던 현대차는 시간당 64.5대로 생산대수가 늘어난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셈이다.

줄어드는 시간만큼의 임금은 생산성 향상에 따른 새 수당을 신설해 보전하기로 했다. 종전의 시간제 임금지급 방식이 월급제로 전환되는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다. 노사는 내년 1월에 시범사업을 실시하되 2016년 3월부턴 ‘8시간+8시간’ 근무형태를 시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밤샘근무 폐지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간 현대차 노사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시행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이것을 노사 간 협상으로 결론을 낸 것이다. 물론 이번 합의는 현대차 노사 모두 100% 만족하지 못한다. 합의안에 대한 현대차지부 조합원의 찬성률(52.7%)만 보더라도 그렇다. 노사 합의문을 보면 수긍이 가면서도 왠지 개운치 않다.

우선, 밤샘근무 폐지의 전제조건에 관한 것이다. 노사는 UPH 향상과 추가 작업시간 확보를 통해 종전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했다. 회사측은 설비투자를, 노조측은 노동강도 강화를 수용했다. 그런데 생산성 향상은 노동강도 강화보다 설비투자에 의해 좌우된다. 이를테면 자동차 공정 중 도장의 경우 근무시간이 줄어들 경우 종전 생산량을 유지하기 어렵다. 노동강도를 강화하거나 추가인력을 투입하더라도 단기간 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없다. 설비투자를 통해 공정을 현대화해야 생산성이 오를 수 있다. 그간 현대차는 내년 8월에야 설비투자가 완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차는 내년 8월에 근무형태를 변경하자는 입장이었다. 이것이 노조와 합의하면서 5개월여 앞당겨 내년 3월4일로 정해진 것이다. 당초 노조는 근무시간 단축으로 발생하는 생산 부족분은 노동강도 강화 없이 30만대 생산설비를 투자해 3천500명을 추가 채용하는 것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합의안만 보면 전제조건이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근무형태 변경이 시작된다. 설비투자가 완료되지 않고, 추가인력 투입도 없는 상황에서 근무형태 변경이 시행되는 것이다. 근무형태 변경의 시작단계에서 혼선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노사가 ‘선 시행, 후 보완’ 원칙을 정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사실, 근무형태 변경 시기는 자동차 부품사에게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현대차 노사 합의문에는 이런 고려는 없다. 물론 현대차지부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는 2014년 3월 말부터 자동차부품사에도 주간연속 2교대를 도입하기로 지난 4일 합의했다. 이런 흐름을 보면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가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래저래 뒷맛은 남는다. 현대차 노사 합의문에도 협력업체의 근무형태 변경과 관련한 현대차그룹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명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주간연속 2교대제에 합의한 자동차부품기업은 소수이며, 그나마 합의했더라도 번복되기 일쑤였다. 그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이 버티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어찌됐든 현대차 노사가 합의함에 따라 자동차부품사도 이를 따라가야 한다. 금속 노사가 도입시기를 1년을 늦췄더라도 부품을 적기공급해야 하는 1차 협력업체는 현대차와 같은 행보를 해야 한다. 현대차 노사에 따르면 직서열 1차 협력업체는 130여곳이며, 이 가운데 절반은 창고에 적재할 수 있는 여건이 돼 그나마 버틸 여건이 된다고 한다. 약 25%는 이런 여건을 갖추지 않아 근무형태를 변경하거나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다. 그나마 1차 협력업체의 사정이 나은 셈이지만 2~3차 협력업체는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 한다. 협력업체의 입장은 간명하다. 근무형태 변경에 따른 비용상승분이 반영되는 ‘적정단가’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완성차의 단가 후려치기 관행은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교대제 개편으로 인한 추가인력과 설비투자 비용에 대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교대제 개편에 따른 추가인력에 대한 정부 지원은 있으나 설비투자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없다.

이렇듯 현대차 노사의 합의는 시행시기만 못 박았을 뿐 보완해야 할 것이 많다. 정부 또한 자동차 부품협력업체에 대한 지원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대차 노사가 합의한 밤샘근무 폐지가 자동차업계에 확산되고, 새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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