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삶·노노모 사무차장)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화재사건에서 지인의 가족이 돌아가셨다. 지인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사고 다음날 무작정 장례식장에 갔다.

원청에서는 찾아오지도 않고, 하청 직원들만 장례식장에 있었다. 위로를 해 주는 것인지 감시를 하는 건지 이후 어떻게 할지 막막해했다. 이런 대형참사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나 또한 혼란스러웠다. 여기저기 단체며 선배 노무사며 연락을 취해 봤다. 목격자 진술을 먼저 받아야 하고, 사건이 은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유족들에게 서로 같이 만나자고 한 뒤 현장소장을 만났다. 당일 현장조사에 유족들이 참여해 보자고 했다. 하루가 지났지만 현장은 매캐한 냄새가 그윽했다. 현장입구는 기자들로 가득했지만 유족들을 제외하고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현장조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소방방재청·전기안전공사 등에서 했다. 처음에는 유족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유족들이 반발하자 유족들과 함께 사고현장인 지하 2층과 3층으로 내려갔다. 이후 관계자들이 본격적인 현장조사를 한다고 했다.

유족들과 조사 관계자들이 현장조사를 하려고 할 때쯤 GS건설에서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현장 앞에서 하려고 했다. 반발하던 유족들은 몰려든 기자들에게 “유족들에게 찾아오지도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으면서 대국민 사과만 하겠다는 것은 기만”, “분명한 인재”라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GS건설 본사 관계자는 대국민사과와 함께 유족들과 원만히 합의하겠다고 밝혔다. 공기단축 등에 대한 압박은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주 있는 일인 것처럼 능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현장조사를 다녀온 유족들은 망연자실해 있었다. 지하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넓은 지하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는 단 2곳밖에 없었다. 소화기는 사무실 공간에 2개만 비치돼 있었다. 비상등도, 안내등도 찾기 힘들었다. 불길이 타오를 때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불 건너 저편에 있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소화기를 원망하며 죽어 갔을 가족을 생각하며 유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GS건설의 사과와 개별 합의로 순서는 넘어갔다. 그것을 당일에 마친 유족도 있고, 아직까지 합의를 마치지 못한 유족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지인 가족의 합의를 도와줬다.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은 부인과 아들이었지만 회사와 협상을 하는 주체는 다른 가족들이었다. 합의 진행내용을 망인의 아들에게 전하자 아들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들은 합의보다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첫째, 내일이 장례식인데 하청에서는 조문을 왔지만 우리 아버지를 죽인 GS건설 원청의 책임 있는 누구도 조문을 오지 않은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그런 상태에서는 합의를 볼 수 없다.

둘째, 이 사고로 아버지가 여기서 돌아가신 것을 이제 곧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건설회사들은 똑같은 일을 다시 저지를 것이다. 가족들은 끔찍해서 시고현장에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위령비를 세워 달라는 것이다.

하청 책임자는 합의가 원만하지 않아 내쫓길 것 같아 원청더러 오라는 말을 못했다고 했다. 밤 11시가 돼서야 원청의 현장소장이 다녀갔다. 위령비에 대해 얘기해 보겠지만 발주처 소관이라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몇 번 더 옥신각신한 끝에 합의를 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 10만인 중 산재사망 24.5명(영국 0.7명, 일본 2.9명, 프랑스 3.3명, 미국 4명, 터키 12.9명)이다. 벌금이 적어서이기도 하고, 사람보다 비용이나 공기단축이 먼저여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제도의 문제일 수 있다. 계속되는 사고에 대한 기업살인법 제정과 징벌적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여러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산재사망사고가 난 곳마다 위령비나 추모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국민은 그 건물을 지을 때 일하다 돌아가신 노동자를 생각하고, 발주처를 비롯한 건물 관계자는 계속되는 반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 국민의 것이니 국민이 유족들의 아픔을 기리고, 건설사의 안전조치 위반에 따른 사건을 상기시키는 뭔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미술관이니까 미술작품이나 조각품, 전시물로 보여 주는 것은 어떨까. 그냥 이대로 시간이 흘러 버리면, 비슷한 사건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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