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법정구속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서경환)는 16일 김승연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했다. 김 회장은 불구속 기소된 상태에서 지난 2년간 검찰 조사와 재판을 받았다. 김 회장의 지시를 받아 계열사 불법지원을 실행한 홍동욱 여천NCC 대표이사와 비자금 조성 혐의가 있는 김관수 한화국토개발 대표이사도 이날 함께 구속됐다.

현직 대기업 총수가 법정 구속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회장은 회장 취임 후 4번 사법처리 됐으며 이 가운데 3번 구속됐다. 그간 횡령·배임 혐의로 조사를 받은 대기업 총수들은 징역형이 구형됐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아 실형을 살지 않았다. ‘유전무죄’라는 말이 회자된 이유다. 사법부의 관행은 지난 2월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서부지법은 1천400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6월에 20억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도 같은 법의 잣대를 들이댄 셈이다.

재판부가 밝힌 구속사유를 보더라도 김 회장의 구속은 필연적이었다. 김 회장은 위장계열사인 한유통·웰롭을 부당 지원하기 위해 한화그룹 지배주주라는 영향력과 지위를 이용했다. 자금 지원에 동원된 한화그룹 계열사에 손실을 입히고도, 법적 책임은 하수인에 불과한 홍동욱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둘러댔다. 부당한 지시로 인해 손해를 입었음에도 한화그룹 계열사들은 김 회장의 선처를 요청했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김 회장이 한화그룹의 총수로서 실질적인 결정을 했고, 범행의 수혜자이지만 반성하지 않은 점을 들어 구속 결정을 내렸다. 사건을 담당한 서경환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은 일반적인 관행이며 오히려 법정구속을 하지 않은 것이 예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변호인의 자료와 검찰의 자료를 검토해 유죄확신이 들면 법정구속하는 것은 상식이라는 얘기다. 재벌총수에게 관대했던 판결은 예외이며, 이것이 관행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이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경영계만 보더라도 그렇다. 법정구속만은 면할 것이라고 예상한 경영계는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을 법정구속한 것은 유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 회장의 법정구속으로 유사한 횡령·배임 혐의로 불구속 수사를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경제 민주화 바람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해 경영계는 초긴장하고 있다. 자칫 경영계의 거센 반발로 역풍이 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를 감안하면 사법부는 이번 판결을 잘못된 관행을 과감하게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벌총수의 횡령·배임, 불법 비자금 조성·제공뿐만 아니라 노동법 위반도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경제법 위반에 비해 노동법 위반은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고려해야 한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10년간 중대재해가 발생한 건설현장에서 사업주가 구속된 사례는 단 7건이다. 구속을 면한 사업주가 받은 벌금형도 대부분 300만원에 불과했다. 대기업 원청 사업주는 책임을 회피하고, 하청기업도 사법처리에서 면제받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는 2천114명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 사망 1위를 기록했는데 사법부도 이런 부끄러운 현실에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이뿐만 아니다. 최저임금법 위반사건은 좀처럼 줄지 않고, 근로기준법과 비정규직 관련법 위반은 늘고 있음에도 사법처리된 사업주는 고작 1%대에 그친다. 불법 연장근로와 불법파견으로 기소될 예정이거나 사법부에 의해 철퇴를 맞은 사업장은 대부분 재벌대기업이다. 노동부가 조만간 불법 연장근로 등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할 예정인 현대·기아차그룹도 여기에 해당한다. 사법부가 불법파견에 철퇴를 내리고, 노동부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한다고 하지만 현대·기아차그룹은 꿈쩍도 하지 않는 실정이다. 이러니 중소업체에 불과한 용역경비업체인 컨택터스가 불법파견과 경비업법 위반을 저지르면서 노동자들에게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컨택터스의 폭력을 등에 업고 파업을 진압한 SJM도 대체인력 위반 등 노동법을 대놓고 위반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법부가 노동법을 위반한 대기업 사업주에게 관대하니 하청업체마저 이런 풍조를 본따 노동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차제에 사법부는 이런 잘못된 관행과 결별해야 한다. 경제법뿐만 아니라 노동법 위반에 대해서도 엄격한 처벌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법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고, 경제 민주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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