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미 기자

지난달 5일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장 앞이 방송노동자들에 의해 점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점거의 주인공은 중소방송사이자 경인지역 민영방송인 OBS 노동자들이었다. OBS노동자들에게도 점거농성은 처음이었고, 방송통신위 입장에서도 점거당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방송통신위는 이날 중소방송 지원을 위한 미디어렙 고시를 앞두고 OBS의 광고판매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와 SBS미디어크리에이트(SBS미디어렙)가 7대 3의 비율로 나눠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의 실무보고안을 채택했다. 언론노조 OBS희망조합지부(지부장 김용주)는 지난달 30일부터 방송통신위 앞에서 "광고판매대행자를 코바코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하며 거리농성을 벌이고 있다. 방송통신위의 최종 결정은 이달 23일로 예정돼 있다.

지난 3일 오후 농성장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용주(39·사진) 지부장은 "SBS는 방송권역이 겹치는 경쟁사"라며 "코바코와 SBS로 광고판매가 분할되는 것은 OBS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지부장은 97년 OBS의 전신인 iTV에 기자로 입사해 2004년 iTV가 송출중단된 후 경인지역새방송창사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올해 4월부터 지부장을 맡고 있다.

"중소방송 지원하려 만든 법, OBS에만 차별적"

미디어렙은 KBS·MBC·SBS·OBS와 같은 방송사로부터 방송광고 판매를 위탁받아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그간 코바코가 방송광고 판매를 독점했는데, 2008년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렸다. 현재 미디어렙은 코바코와 SBS미디어렙이 있다.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미디어렙법)이 시행되기 전 중소방송사의 광고는 코바코의 결합판매로 이뤄졌다. 결합판매는 KBS·SBS·MBC 같은 방송사 광고에 지역방송·종교방송 등 중소지상파방송사의 광고를 묶어 판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통신위는 왜 코바코와 SBS미디어렙의 OBS 광고판매대행을 7대 3의 비율로 나눈 것일까. 코바코에서 광고판매대행을 독점할 때 OBS의 광고는 KBS·MBC·SBS 광고와 3대 4대 4의 비율로 결합판매됐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를 합친 70%, SBS 30%가 그대로 미디어렙 분할판매 비율로 결정된 것이다.

김 지부장은 "매우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며 "법을 집행하는 방송통신위는 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렙법에는 분할대행에 관한 조항이 없다. 법 19조에 따르면 방송통신위는 중소지상파방송사업자가 방송통신위원회에 광고판매대행자를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할 때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광고판매대행자를 지정할 수 있다. 지부의 요구는 공영미디어렙인 코바코로 지정해 달라는 것이다.

"경인지역 1천500만명, 시청주권 달린 일"

방송통신위는 OBS에 대한 결합판매 최소 지원규모로 지난해 광고매출의 76.7%에 17.3%의 가중치를 둔 253억원으로 책정했다. OBS는 지난해 18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김 지부장은 "가중치 17.3%는 전국의 지역민방과 라디오·지역 MBC 등의 초기 5년 평균성장률"이라며 "OBS에 적용할 합리적인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실제 253억원은 2002년 iTV 광고매출(504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그는 OBS가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로 '프로그램 자체제작 50%, 자체편성 100%'를 꼽았다. OBS는 민영방송사이긴 하지만 공익적 프로그램이 많다. OBS 전신인 iTV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가 결합해 탄생시킨 지역방송국이기 때문이다. 김 지부장은 "OBS는 현재 자본금 잠식상태로 채권을 발행해 마련한 100억원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광고판매 분할대행으로 결정될 경우 지상파 방송의 위상을 잃고 퇴출될 위기에 놓인다"고 우려했다.

"경인지역의 인구가 서울보다 많은 1천500만명입니다. 이런 지역에 지역방송사가 없다는 것은 시청 주권을 말살하는 겁니다. 지역민들의 시청주권을 지켜야 합니다."

"방송통신위, 미디어렙 애초 취지 생각해야"

현재 지부 조합원들은 폭염 속에서 방송통신위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미디어렙·방송통신위원회라는 표현 자체가 어렵지만 할아버지들도 관심을 갖고 투쟁특보를 받아 가세요. '중소'라는 단어에 끌리시는 것 같아요."

김 지부장은 중소방송사들의 싸움을 대형마트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중소상인에 비유했다. 그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은 원칙을 갖고 행정을 해야 한다"며 "이해당사자들의 눈치보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렙법은 애초 취지가 중소방송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거대방송사의 눈치를 보면 안 됩니다. 홈플러스·이마트 눈치 보느라 중소상인의 입장을 안 들어줘도 되나요? 이제 시민들도 대기업에 맞선 중소상인을 지지하는 시대정신이 체화돼 있습니다."

김 지부장은 "방송통신위가 시대정신에 입각해 소신있게 행정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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