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벌집 쑤셔놓은 듯 술렁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증권회사 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조작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 증권회사가 자진신고를 하면서 은행권으로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우리·국민·하나·농협·기업 등 9개 은행과 10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CD는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 예금증서이며, 단기금리의 기준금리로 활용되고 있다.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중소기업대출의 기준금리 역할을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42조7천억원이며, 이 가운데 절반이 CD금리 연동대출이다. CD금리 담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금융권은 금리 조작을 통해 막대한 부당이익을 얻은 것이다. 서민이 그 부담을 떠안은 셈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은행이 CD금리를 조작해 최소 0.1%포인트를 더 받았다면 연간 3천155억원의 부당이익이 발생한다”며 “사실로 확인될 경우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금리담합 조사에 이어 소비자단체들의 집단소송이 예고되면서 증권시장에서 은행주는 하락새로 돌아섰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서민을 상대로 한 고리대금업을 취한 금융권에 대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은 “금융당국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래저래 금융권이 뒤숭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듯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금융당국은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당초 “담합 가능성은 낮다”며 사전 협의 없이 조사를 진행한 공정거래위에 유감을 표시했다. 또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결론도 나기 전에 금융회사를 파렴치범으로 몰아선 안 된다”며 되레 금융권을 변호하고 나섰다.

증권회사가 CD금리를 조작했다고 자백한 마당에 금감원의 발표는 말 그대로 궁색한 변명이다. 사태를 애써 축소하려는 것이다. 현재로선 공정위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거나 CD금리를 대체할 수 있는 기준금리를 만드는데 노력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를 변호하거나 공정위에 유감을 표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금융권의 금리담합 의혹은 그간 증권가를 중심으로 소문으로만 나돌았다. 한국은행이 최근 금리인하를 단행했는데도 CD금리는 몇 달째 그대였기 때문이다. 금리담합 소문이 꼬리를 물고 증폭된 배경이다. 공정거래위가 전격적으로 조사에 나서면서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금융감독원은 그간의 감독태만에 관해 자성을 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사실 금융회사들이 서민을 대상으로 돈놀이에 혈안이 된 것은 금융공공성이 유실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산업을 뒷받침하는 혈맥과 서민들의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포기하면서 금융기관과 주주이익에만 치우친 결과다. 금리조작 사건은 이러한 기류에 편승한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다.

한국노총 금융노조가 오는 30일 12년 만에 산별노조 파업을 벌인다.‘대기업과 부자들의 전당포로 전락한 금융기관을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 파업의 배경이라고 한다. 더 이상 서민과 중소기업이 직면한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학생 학자금을 무이자로 대출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새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요구안도 내 놨다. 비정규직 채용을 억제하고, 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계획도 제시했다.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금융노조가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노조가 금융 공공성을 회복하는데 앞장선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은행 간의 무한경쟁에 협력하거나 임금인상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가 단체행동에 나섰다는 것만 부각시키고, 비난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고소득 노조가 파업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며 노조를 비난만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노조가 파업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선택한 까닭은 아예 외면하고 있다.

금융노조가 사회적 의제로 금융공공성을 부각시키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단체행동을 한다면 국민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금융노조의 행보가 금리담합 의혹으로 어지러운 금융권에 대해 해법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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