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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갈등을 부정하나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늘 갈등을 부정하고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체제 안정을 위협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민주화 이후에는 같은 논리를 보수파들이 이어갔다. 힘이 약한 사람들이 결사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할 때마다, “모처럼의 통합 분위기를 해치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라는 비난을 집중적으로 쏟아냈던 것도 그들이었다. 갈등을 극복하자는 것, 그것이야말로 민주화이후 보수파들의 공식담론이 아닐 수 없었다. 갈등극복과 사회통합을 내세운 위원회가 유행처럼 만들어졌고, 이 정부 들어와 대통령 자문기구의 지위에까지 이르게 됐다. 언론과 학계 그리고 지식인들은 그 틈을 타서 지역·노사·이념·세대 등의 갈등 극복방안을 주제로 많은 연구용역 과제를 챙길 수 있었다.

갈등을 곧 분열로 보거나 통합을 앞세워 갈등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즐겨 향유하는 것은 대개 구체제 기득세력들이다. 그들은 현재와 같은 자원과 영향력의 분배구조가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차이나 이견, 갈등은 기존의 분배구조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불러들여진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가능케 하는 전환의 계기 역시 그로 인해 촉발될 때가 많다. 물론 누구도 갈등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심리적 불편함을 동반하지 않는 이견도 없다. 그렇지만 갈등은 없앨 수 없는 인간사회의 기본 요소다. 어떻게 하면 갈등과 이견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통합할 수 있을까. 현대 민주주의의 최대 고민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한마디로 말해 갈등에 기반을 둔 갈등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의 매개 없이 사회적 정체성은 형성될 수 없다. 계층갈등·인종갈등·지역갈등이 없다면 누군가가 자신을 노동자나 흑인, 호남으로 인식하고 그 의사 표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갈등이 없다면 한·미 FTA 반대자로, 보편적 복지의 찬성자로, 조세정책에 대한 불만자로 행동할 수 없다. 시민이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투표할 수 있는 것도, 갈등이 있고 이를 대표하는 정치적 대안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갈등의 표출과 조직화를 권리로 인정하고, 그렇게 해서 형성된 복수의 갈등 조직자들이 합법적으로 갈등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갈등이 갖는 분열적 효과를 제어하려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갈등을 관리해 사회를 안정적으로 통합해 내는 비결은, ‘갈등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갈등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데 있다. 예컨대 노사갈등이 기업 내 노사문제로 한정된다면 갈등의 범위는 최소화되겠지만, 이 경우 갈등의 표출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다. 극심한 기업별체제하에서 노동배제적 정책과 결사적 저항이 일상이 돼 버린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지 않고 유럽처럼 노사문제가 산별체제나 전국적 노사정체제로 확대돼 다뤄지거나, 집권을 두고 경쟁하는 정당들의 경제정책 내지 노동시장정책이 중심 의제인 나라일수록 노사갈등의 강도는 약해져 더 높은 산업평화가 유지된다. 갈등을 협소한 범위 안에 가둬 생사투쟁식이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 없이 민주주의는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통합진보당의 사례 역시 이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에게 드러난 문제를 자신들 내부의 협소한 정파적 틀에 묶어 두는 선택을 했다. 안 그러면 “당이 깨진다”는 이유였다. 갈등을 분열로 보는 생각, 갈등의 내용이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고는 진보를 말하는 이 당에서도 지배적이었다. 결국 갈등은 몇 안 되는 활동가 서클들 사이에서 누가 더 선의를 갖는가를 둘러싼 경쟁으로 축소됐고, 그러는 사이 사회적 참여와 관심은 사라진 반면 그들 내부의 갈등은 극단적이 됐다. 싸움 중단을 호소하는 흰 두루마기와 큰절은 고결함과 겸손으로 상대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고자 하는 무의식만 드러냈을 뿐, 실제로는 갈등을 억압하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읍소하는 사람과 자유로운 공적논쟁이 가능할까. 이번 지도부 선거를 지켜보면서, 그렇게 큰 사건을 겪은 정당이 발산하는 사회적 내용이 이토록 빈약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이제 지도부 선거를 마쳤으니, 구세력뿐만 아니라 신세력도 통합의 명분을 앞세울 이해관계를 갖게 됐는데, 모두가 분열의 극복과 통합을 말하는 동안 “갈등의 사회화와 좋은 논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엔진”이라는 사실이 더 심각한 망각의 영역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parsh0305@gmail.com)

박상훈  parsh03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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