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제빵업계의 선두주자인 SPC그룹(회장 허영인)의 모태는 ‘상미당’이다. 이들 기업이 생소하다면 국민간식으로 불린 ‘크림빵’을 만든 삼립식품을 떠올리면 된다. 삼립식품·샤니, 파리크라상, 배스킨라빈스코리아(비알코리아), SPC LIS, SPC 캐피탈, 밀다원이 SPC그룹의 계열사이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다는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파리크라상이 핵심 브랜드다. SPC그룹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기업을 모토로 하고 있다.

SPC그룹은 2011년 현재 매출 3조원을 돌파하면서 매년 2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제과·제빵점인 파리바게트는 대기업인 CJ그룹이 운영하는 뚜레쥬르와 경쟁하면서도 선두자리를 한 번도 내 준 적이 없다. SPC그룹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5천500여개에 이르며, 최근에는 중국과 미국에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합병된 샤니·삼립식품은 지난 2000년 이후 신노사우수기업과 산업평화상을 받으면서 노사협력 기업으로 알려졌다. 파리크라상은 2년 연속 고용창출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이렇듯 잘 나가는 SPC그룹에게도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계열사인 비알코리아의 하청업체인 서희산업 노조가 최근 60여일 넘게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희산업은 비알코리아의 충북 음성공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하청업체다. 당초 비알코리아 직원이었던 서희산업 노조원들은 외주화로 인해 하청업체 직원으로 전락한 사례다. 비알코리아는 외주화 당시 직원들에게 정규직과 동등한 임금·근로조건을 보장했는데 그간 차별을 했다는 것이다. 비알코리아 직원과 서희산업 직원은 두 배 이상의 임금과 복지혜택의 차이가 벌어졌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결국 서희산업 직원들은 지난 2010년 노조를 설립했고, 올해 4월에는 쟁의행위 직전까지 이르렀다가 가까스로 합의했다. 비알코리아와 서희산업 노사는 ‘비알코리아의 정규직으로 전환하되 10일 이내 시기와 방법을 결정한다’고 합의했다. 이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희산업 노조가 쟁의행위를 중단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원청인 비알코리아는 약속을 파기했다. 프랜차이즈점·하청업체와 상생의 문화를 지향한다고 홍보해 온 SPC그룹의 두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서희산업 노조원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이다.

서희산업 노조원들은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매일 거리 홍보활동과 집회·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 시내 배스킨라빈스 매장 앞에서 불매운동도 벌이고 있다. “약속대로 차별 해소와 정규직화를 추진하라”는 게 서희산업 노조원들의 요구다.

비알코리아는 하청업체일지라도 서희산업 노조에게 약속했다면 이를 지키는 게 마땅하다. SPC그룹 계열사인 샤니·삼립식품 노사가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적 노사문화를 일궈 온 것과 비교하면 비알코리아의 행태는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정규직 노조와의 약속은 지키되 사내하청 노조와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버려도 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윤리경영을 표방해 온 SPC그룹의 경영 취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비알코리아가 계열사지만 그룹 경영 원칙에 어긋났다면 SPC그룹이 나서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비알코리아는 서희산업 노조에게 ‘5년 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하면 정규직화를 고려하겠다’며 약속을 번복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또 비알코리아는 서희산업에게 2022년까지 10년간 도급계약을 체결하면서 고용안정을 보장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10년간 도급계약을 체결할 정도라면 서희산업 직원들을 정규직화 할 여력은 충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사회적 분위기’를 핑계로 정규직화 약속을 파기한 것은 석연치 않다. 서희산업 노조와 한국노총 화학노련은 비알코리아를 불법파견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한 상태다. 비알코리아에 대한 고발은 식품유통산업 전반의 사내하청 실태의 속살을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비화될 수 있는데도 비알코리아가 사회적 분위기를 운운한다면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비알코리아는 애초 약속대로 정규직화를 하는 게 되레 사태를 키우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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