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올해 대선 쟁점 중 하나는 재벌개혁에 관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재벌개혁의 핵심 정책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순환출자규제·출자총액제한 등을 통해 소수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총수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도급 관련 제도를 개정하고, 불공정거래에 관한 고발권을 확대해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것이다. 각론에 따라 여러 방안들이 더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총수의 경영권에 관한 문제와 대기업-중소기업 관계에 관한 문제 두 가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의 재벌개혁 방안으로 과연 노동자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먼저 재벌총수의 경영권 문제. 재벌총수가 지분만큼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얼핏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주주들이 지분만큼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 드러난 미국 두 자동차 기업의 엇갈린 운명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지분에 따른 경영권이 가장 잘 구현된 기업으로 평가받는 지엠(GM)은 파산에 이어 정부 구제 금융을 받았다. 반면에 한국재벌과 비슷하게 소수지분으로 오너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었던 포드는 정부 구제금융 없이 경제위기를 견뎌냈다. 두 기업이 세계경제위기에 다른 길을 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경영방식이었다. 지엠의 경영진은 90년대부터 주주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자동차생산과 개발보다 단기적 수익이 많이 나는 금융투기에 열중했다. 주주들이 선임한 전문 경영인은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매년 고용은 줄였고, 배당은 늘렸다. 포드 역시 미국 경제 전반의 금융화 속에 금융투기를 늘렸다. 그래도 지엠보다는 주주들의 단기적 요구에 좀 더 거리를 뒀다. 주주들의 조급한 이해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오너 경영체제가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것이다.

진보진영 일부에서 마치 재벌총수 경영체제를 주주들이 임명한 전문경영 체제로 바꾸면 경제적민주화가 이뤄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오히려 퇴보에 가까웠다. 또한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불안과 기업파산이라는 재앙에 다름 아니었다.

다음으로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개선 방안. 이 역시 얼핏 타당해 보인다. 실제 많은 중소기업들이 매년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1차 부품사들이 좀 더 원청으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한다고 해서 부품사 노동자들의 조건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원하청거래의 가장 진일보한 입장이라는 이윤공유제를 보자. 이윤공유제를 실시하고 있는 브라질 헤센데 지역의 폭스바겐 부품사 사례를 보면, 부품사들은 공유할 이윤을 크게 늘리기 위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했다. 정규직 고용을 부품사들이 오히려 상호규제하기까지 했다. 한 기업이 정규직을 고용해 노동비용을 높이면, 모든 기업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예는 많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현대차 1차 부품사 430개 사의 상황을 보자. 이들의 지난해 평균매출액은 경제위기 전인 2007년에 비해 47%, 영업이익은 63%가 늘어났다.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영업이익률 역시 3%에서 3.4%로 상승했다. 현대차 성장에 따라 매출액이 크게 늘었고, 현대차의 거래조건이 예전에 비해 약간 좋아진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성장에 비해 1차 부품사 생산직 전체 노동자 임금총액은 단지 20%만 늘었다. 생산 증가에 비해 임금증가는 절반도 되지 않았다. 생산 증가의 상당수를 외주화, 비정규직 사용을 통해 이뤘기 때문이다. 특히 무노조 사업장의 경우 임금총액 증가가 12%에 불과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총액으로 보면 무노조 기업의 생산직 임금총액은 2007년보다도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1차 부품사들에 대해 아예 노골적으로 노동 배제적 이윤 공유를 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은 삼성전자로부터 자본 투자도 받고, 해외진출 시 부지와 공장 건설에 관한 협조도 받는다. 납품가 역시 신제품 출시 때마다 곧잘 올려받고 있다. 원·하청 상생의 모범이라 할 만한데, 이 기업의 노동자들은 모두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당연히 노조는 꿈도 못 꾼다.

한국 재벌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방안은 시급한 문제다. 하지만 현재 많은 재벌개혁론은 겉만 진보일 뿐 속은 오히려 자본 편향적인 것들이 많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정책을 진보정책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까지 예로 보면 원·하청 거래 개선으로 자본이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이득이 노동자에게까지 미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원·하청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과 1차 부품사의 노동 배제적 이윤 카르텔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동운동 진영은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처해 있는 현실에 입각해 재벌의 사회적 통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이야기되는 이러저런 재벌 개혁론에 뒤꽁무니를 좇을 일이 아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