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부모님 댁에 간다. 삼형제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이 마주하는 저녁 식탁에선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최근 주제는 요양원이었다. 식탁을 물리고 난 후 본 텔레비전 뉴스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관련된 보도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1일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4년째 되는 날이었다.

“요즘 동네에 요양병원이 생기고 있는데 그거 말 하나 보지.”

어머니가 불쑥 말씀하시니 그제야 형제들이 반응을 보였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시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호주에 사시는 고모부는 요양원에서 여생을 마치셨잖아요. 고모도 현재 요양원에 계시고요.”

삼형제 중 둘째인 필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호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를 책임진다는 영국의 무상의료시스템(NHS)이 이식된 곳이다. 의료·요양과 관련된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오래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 지 4년 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와 호주를 비교하는 게 무리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필자는 무리한 비교를 하면서 얘기를 꺼낸 셈이다.

“그런 말마라. 난 요양원엔 안 간다. 주변 노인들에게 들어보니 동네 근처에 있는 요양원이 말이 아니라더라. 그런 곳에 왜 가니. 난 집에 있을란다.”

어머니께서 정색을 하시며 말씀을 하시는 게 이해가 됐다. 요양원 얘기를 꺼낸 자식에게 매우 서운해 하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핵가족이 보편화 돼 노인 돌봄이 사회화되고 있는 추세라도 예민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최근 접하는 요양원의 실태를 봐도 어머니의 말씀은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항간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현대판 고려장제도’라고 비꼰다. 지난 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요양보호사 노동인권 개선 권고’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중증을 앓고 있는 노인의 간병을 국가와 사회가 분담하려는 제도로, 지난 2008년 7월부터 시행됐다.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받는 수급자는 지난해 7월 말 현재 31만4천240명으로 전체 노인인구의 5.8%다. 요양보호사 자격취득자는 2010년 말 기준으로 98만3천823명으로 이 가운데 23만7천256명(24%)이 취업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제도 시행 당시 호평을 받았다. 재원은 준조세인 사회보험으로 걷고 있지만 운영은 민간에 전부 맡기는 형식을 취했다. 4년 동안 민간 요양보호기관은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눈 먼 돈을 타내려는 요양기관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양보호사의 노동조건은 최악이다. 그러다보니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용자 집에서 일하는 재가 요양보호사의 경우 6~7천원의 시급을 받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최저임금(2011년 기준 4천320원)을 받는다. 4대 사회보험 혜택은 꿈도 못 꾼다. 수급자가 본인부담금(15%)을 내지 않으면 요양보호사가 이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시설 요양보호사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시간 외 수당은 물론 제 수당이나 퇴직금마저 떼이고 있다. 기본임금을 정하지 않고 요양기관이 알아서 정한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요양기관이 포괄임금제를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시설 요양보호사에겐 법정노동시간은 그림의 떡이다. 하루 12시간 근무하면서 휴게시간 명목으로 4시간을 공제해 8시간만 근무한 것으로 기록하는 사례도 있다. 월 평균 근로시간은 53시간인데 12시간 교대 또는 24시간 격일교대 근무를 하는 시설 요양보호사가 절반이다. 시설 요양보호사가 돌봐야 하는 수급자만 주간에는 평균 9.7명, 야간에는 평균 16.5명이다.

반면 수급자에 비해 공급 과잉된 재가 요양보호사의 경우 수입과 고용이 늘 불안정하다. 재가 요양보호사 가운데 요양업무 외 손님접대·김장 등 가사서비스를 강요받은 사례도 있다. 폭언과 성희롱 그리고 근골격계질환을 달고 사는 게 재가 요양보호사들의 처지다.

관계당국의 관리감독이 허술하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를 지급하지만 요양기관과 이용자 관리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이중구조인 탓이다. 이러니 노인은 현대판 고려장제도로, 요양보호사는 국가공인 파출부제도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 아닌가.

국가인권위가 정부당국에 권고한 것처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빠른 시일 내에 개선돼야 한다. 적어도 요양보험 운영은 민간에만 맡겨선 안 된다. 부모와 자식이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공공요양시설이 늘어나야 한다. 요양급여와 관리감독의 이중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철저한 관리감독을 하지 못한 정부당국부터 각성하라는 것이다. 요양보호사의 노동인권은 개선돼야 하며, 적어도 사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19대 국회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노인 돌봄을 국가와 사회가 분담한다는 취지에 걸맞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수술하라는 얘기다. 더 이상 부모와 자식이 요양원을 두고 어색한 대화를 할 수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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