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박원석(43·사진) 통합진보당 의원은 “시민운동의 소중한 자산”으로 불린다. 그는 우리사회를 흔들었던 이슈와 늘 함께했다. 촛불집회 당시에는 광우병대책위원회 공동상황실장으로 활약했고, 서울 친환경무상급식추진운동본부·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에서는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박 의원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해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길은 평탄하지 않다. 당은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부정·부실 의혹으로 혼란에 빠졌다. 그 와중에 박 의원의 이력이 하나 늘었다. 새로나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그것이다. 지난달 23일 위원장 수락 기자회견에서 그는 “명실상부한 현대화된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재창당 수준에 버금가는 당의 근본적 혁신과제를 도출하고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달 18일 혁신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언론은 "통합진보당이 대북·대미 노선을 바꾼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당내 논란은 더욱 커졌다. 옛 당권파 의원과 당원으로 구성된 당원비대위는 “당헌·당규에도 맞지 않는 것들이 보고서에 들어 있다”고 반발했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까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아 그냥 마시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강기갑 후보), “비이성적인 종북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강병기 후보) 등의 지적이 나왔다.

"통합진보당 핵심 문제는 낡은 정파질서"


지난 25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박 의원은 “대북·대미 관계 중심으로 조명이 되다 보니 선정적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쟁점에 대해 소신발언을 이어 갔다. “(대북 문제와 관련해서) 해야 할 말을 못하고, 안 다루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통합진보당의 핵심적인 문제는 낡은 정파질서”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박 의원은 “정파가 정책과 노선을 당 운영이나 활동에 관철시키기 위해 활동하면 정책적 긴장이 형성되면서 당을 생산적으로 이끌 수 있다”면서도 “지금과 같은 패권적이고 운동권 전위주의적인 관점에 기초한 정파활동은 대중정당 운영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쟁점과 관련한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진성당원제="당원 중심의 정당은 좋은 얘기다. 진성이라는 말을 붙일 것도 없이 당원제라고 하면 된다. 진성당원제가 실은 정파패권의 들러리처럼 돼 있다. 당원 동원, 패권적 행위를 합리화시키는 기제다. 투표권력으로 왜곡됐다. 진성당원제의 개방적인 재정립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해서 공직선거권의 개방을 얘기했던 거다. 진성당원제 약화라고 선동하는데, 오히려 진성당원제가 건강해지고 강화된다고 생각한다."

◇대북 문제="
종북주의 색깔론이나 이데올로기 공세는 누구에게도 동의받을 수 없다. 당이 종래부터 북한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게 아니다.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었고 비판할 것은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드러나는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북의 핵실험이 있었을 때 자위권 차원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를 당의 주요 간부가 했었다. 당시에 나왔던 성명도 북의 핵실험을 강하게 비판하지 못했다. 북한의 핵개발이나 벼랑 끝 외교전술은 일언반구 얘기하지 않는다. 북을 대화의 상대로, 통일의 파트너로 존중한다는 것과 비판하는 것은 모순되는 게 아니다. 핵이든, 인권이든, 3대 세습이든 국민의 인식이나 진보의 관점에서 동떨어진 부분은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비판하면서 대화할 수 있다."

◇한미 관계="
한미관계에 관해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명시하고 있는 당의 강령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단계적 철수가 당론이다. 기본적으로 옳다. 주권국가 영토 안에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현실은 극복돼야 한다. 그러나 강령은 그렇지 않은데도 당장 한미동맹 해체나 주한미군 철수 요구로 보일 만한 구호를 외쳤다. 그게 실현 가능한가. 한미동맹은 미군이 이 땅에 주둔을 시작한 이후부터 수십년간 존재해 온 정치적·군사적 힘인데 말로 해체되나. 일각에서는 중국의 패권과 일본의 군국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조건에서 동북아 평화의 균형추로 역할과 성격을 변화시켜 새롭게 주한미군 역할을 설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그런 논의에도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재벌해체="
재벌해체 총론을 누가 부정하나. 총수일가가 정당하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는 해체돼야 한다. 그렇다고 대기업집단을 인정하지 않을 건가. 그러지 않을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30개 대기업을 3천개 전문기업으로 분화하겠다는 민주통합당의 공약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수단이 없다. 계열분리 명령제를 주장하는데, 이를 시행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 미국이 유일하지만 실제 제도를 적용한 사례는 거의 없다. 30개를 3천개로 쪼갠다는 식으로 단순화시켜 구체적 경로와 방법론도 없는 공약을 내미는 것, 그런 식으로 공약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에게 비웃음을 받는다. 그런 거 하지 말자는 거다."

◇노동할당="
노동부문 할당은 이미 없어졌다. 부문할당이라는 게 정당의 형성기에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작용했는지 평가가 필요하다. 노동할당이 당의 노동중심성을 지키는 데 순기능을 하고 노동의 정치세력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역선출직과 무관하게 당에 할당하고 대의원 배분해서 리스트를 가져왔지 않나. 그걸 가지고 노동중심성이 지켜졌는가. 아니다. 당과 노동과의 관계가 지나치게 노동 상층 말하자면 지도부나 핵심활동가 중심으로 고착화됐다. 노동의 기층으로 내려가면 당이 없다. 그런 면에서 노동중심성이 매우 형식화돼 있다. 노동중심성은 조직노동 중심성, 민주노총 중심성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중심성이 아니라 노동가치 중심성으로 명확히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당권파 복권하면 당 아래로부터 무너져"

박 의원은 “영국노동당 식의 진보정당 모델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노조 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상황에서 조직노동에 기반한 정당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진보당으로 오면서 계급정당의 성격이 없어지고 계급연합정당 성격이 강화됐다”며 “2단계 노동정치세력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중심성이 아니라 정파중심성이 더 우선됐던 정당”이라며 “노동을 대변하는 사람이 중앙위에서 노동이 아니라 정파를 대변하는 발언과 행동을 해도 노동이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원인은 "정치적 이성의 부재"로 요약했다. 그의 말이다.

“정치라는 게 잘하면 권력을 잡는 것이고 잘못하면 수가 많아도 권력을 내려놓는 겁니다. 통합진보당에는 그런 게 없어요. 잘못해도 잘못한 적이 없는 거고, 잘못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기가 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패권입니다.”

그는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사퇴 논란에 대해서도 “부정을 지시했고 저질러서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다”며 “기존에 물러났던 경쟁명부 후보들도 정치적 책임을 진 것인데, (옛 당권파들은) 정치적 책임을 법률적인 인과관계로 치환하는 논리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2차 진상조사결과가 나와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물러나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런 식의 논리를 세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당내 권력투쟁을 위해 참여계 등이 기획한 음모라는 시각에 서 있어요. 선거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이런 조건이라면 지리한 책임공방만 이어질 겁니다. 당 지지율이 반토막 나서 국민들한테 용도폐기되든, 우리는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겁니다.”

박 의원은 "이번 당직선거에 당의 존망이 걸려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기동부의 투표권력에 얹혀 대표가 되면 혁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적 이성이 없는 정치는 괴물이 됩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야권연대를 하지 않겠다고 나오는 이유는 같이 괴물이 될 수 없다는 얘기예요. 당권파가 복권하면 야권연대는 깨집니다. 누가 탈당을 기획하지 않더라도 밑에서부터 무너질 겁니다. 노동계가 철수를 공언하지 않았습니까. 참여계도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유분방한 성향을 보면 쭉 빠져 나갈 겁니다. 그러면 도로 자민통당이 되고, 도로 민주노동당이 됩니다. 야권연대로 MB를 심판하려면 지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무당파 당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며 “정당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조건부 철수를 결정한 노동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이 결집하고, 중심을 잡아 줘야 합니다. 그래야 노동중심성이 생겨요. 중심을 잡으려면 투표에서 확실히 보여 줘야죠. 결집력을 보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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