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차 코레일 철도기관사인 최아무개(46)씨는 올해 1월 오산대역에서 정지위치 어김사고(역주행)를 일으켰다. 지난 98년 사상사고를 겪은 후 오랜 시간 고통을 겪다 발생한 사고였다. 최씨는 곧바로 직위해제됐다. 3개월 동안 징계 및 재심기간을 거친 끝에 4월에 3개월 감봉처분을 받았다. 직위해제 기간 동안 최씨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안전교육을 받았다. 모멸감을 주는 교육방식 등으로 인해 동료에게 자주 고통을 호소했다. 이후 업무에 복귀한 최씨는 '사고 뒤 또다시 징계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해 ‘직무부적응에 의한 스트레스성 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을 복용했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이달 19일 병가를 신청했다. 22일에는 차량직종으로 전직을 신청했다. 그러던 최씨는 이튿날 정오 자신이 사는 아파트 옆동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이달 11일 코레일 철도기관사 박아무개씨가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전동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지 12일 만에 발생한 사고였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드러난 문제="터질 것이 터졌다." 최씨의 동료였던 철도기관사 김아무개(42)씨는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사고철이라는 오명을 얻으면서 지난해부터 코레일의 징계가 강화돼 기관사들이 운전장애 등에 따라 징계를 받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며 불안해했다"며 "겉으로 표출하면 부적절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을까 삭여 왔지만 최 기관사의 죽음은 누적된 것이 터져 나온 예견된 사고"라고 말했다.

유족과 철도노조는 철도 사고와 장애의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하는 코레일의 잘못된 경영방식을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노조에 따르면 허준영 전 사장은 취임 후 정시율 등을 내세우며 발생하는 사고 및 장애에 대해 직원징계를 남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20여명이 징계와 강제전출을 당했고, 3명이 해고됐다.



◇"역주행은 안전과 무관, 불가항력적 오류 인정해야"=최씨가 운행한 1호선 국철은 열차의 종류가 다양해 운전장애를 일으키는 외부 변수가 많은 구간이다. 도시철도의 경우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만 국철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아 자살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열차에 뛰어든 자살자 61명 중 코레일 구간에서만 53명이 발생했다.

그런데 코레일은 내부규정을 바꿔 운전장애 및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겼다. 역주행은 열차가 정지위치를 지나 정차할 경우 퇴행운전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안전과 무관하다. 그런데도 코레일은 정지위치를 지나 퇴행할 경우 기존과 달리 승인을 받도록 내부규정을 바꿨다. 또 철도사고 발생시 정해 둔 문책기준 항목을 삭제했다. 문책기준을 직원들에게 공개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근본적인 사고원인은 방치한 채 기관사에게 책임을 전가해 오히려 안전운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사고가 발생하면 노사가 함께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기준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며 "무엇보다 인간이라면 불가항력적으로 일으킬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간 건강하지 못한 노동환경에 시달렸던 노동자들이 아픔을 겉으로 표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치유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코레일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내부 사규에 맞춰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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