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7일 서울 종로 국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재단 해체 시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조현미 기자

알코올환자를 포함한 주류소비자 보호를 위해 주류업계 출연으로 지난 2000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알코올 문제 전문연구기관인 (재)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카프)가 설립 12년 만에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97년 국회에서 담배처럼 주류에도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자는 입법이 추진되자 이에 반대한 주류업계가 국세청과 주도해 만든 것이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다. 주류업계 회원사가 모여 있는 한국주류산업협회는 매년 50억원의 재단 운영 출연금 지급을 약속했다. 그런데 2010년 말부터 최근까지 100억원에 달하는 출연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 주류협회는 재단의 핵심 사업인 알코올 전문치료기관 카프병원의 운영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주류협회장은 재단 이사장을 겸직해 왔는데, 전 이사장은 재단 건물 매각까지 시도했다가 노조에 덜미를 잡혔다. 협회장은 해마다 국세청 낙하산 인사가 맡고 있다.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왜 해체위기에 놓였는지 <매일노동뉴스>가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알코올중독자 1위 한국, 대부분 사회적 약자

백동국(60·가명)씨의 유년기 시절 꿈은 대통령이 돼서 술을 모조리 없애는 것이었다. 술 먹고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 가난과 폭력을 참지 못해 집을 나갔다 다시 돌아와 술로 버티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집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느 날. 무기력 했던 17살의 백씨는 우연히 술을 마셨다. 그 후 백씨는 보기만 해도 치가 떨렸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았다. 술로 각종 사고를 일으키며 6개월마다 직장을 옮겨 다녔다.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종교집단·정신병원 등 안 가 본 곳이 없었다. 번번이 실패했고 7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백씨는 2005년께 알코올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공익재단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를 알게 됐다. 센터에서 두 달 입원 후 재활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같은해 7월3일. 백씨는 17살 이후 처음으로 술을 먹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달이면 술을 먹지 않은 지 7년이 된다. 그는 현재 센터에서 알코올중독자를 돌보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백씨는 "호적에 기록된 생일 대신 7월3일에 매년 생일잔치를 한다"며 "카프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든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 술 소비량 세계 1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알코올중독자 비율 1위 국가다.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연간 10조원에 이른다. 알코올중독자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서울경찰청이 최근 음주폭력으로 구속된 100명을 분석한 결과 무직이 82명, 나머지는 고물수집 등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빈곤층이었다. 가장 싼값에 가장 빨리 위안을 얻기 위해 술을 찾는 것이다. 백씨는 “알코올중독은 사회·경제적 영향이 적지 않다”며 “무엇보다도 알코올중독은 가족을 파괴하는 ‘가족병’으로 사회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센터는 알코올중독자와 가족이 함께 치료를 받으며 사회복귀를 위한 재활프로그램과 음주예방교육·연구 등을 한번에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이처럼 종합적인 돌봄과 사후관리까지 가능한 곳은 국내에서 센터가 유일하다. 해외에서도 모범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센터가 최근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해체위기 놓인 알코올중독 피해자의 마지막 보루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담배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고 있다. 국민건강증진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97년 국회에서는 술에도 기금을 부과하려고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자 주류업계는 "사회경제적 기여도가 큰 주류산업이 도산할 것", "술은 건강위해물이 아니라 기호품"이라고 주장하며 법 개정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기업이윤 사회환원 차원에서 매년 100억원의 자금을 조성해 건전한 음주문화를 정착시키고 알코올 문제 예방과 치료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97년 한국주류산업협회(당시 대한주류공업협회)와 주류제조업체 36개사는 알코올 관련 연구·예방사업·전문병원 건립·사회복귀시설 건립 등을 약속했다.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약속한 출연금은 50억원으로 줄었다. 주류협회는 2000년 보건복지부에 "매년 50억원의 소비자보호사업회비를 조성해 재단(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의 사업재원으로 출연하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특이한 점은 재단 설립에 국세청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2000년 재단 설립 발기인대회에는 당시 안정남 국세청장이 발기인으로 참석했다. 안 전 국세청장은 "지나친 음주와 잘못된 음주습관에 기인한 알코올문제는 세계 일류국가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재단은 주류업계가 건강증진기금 납부를 회피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지는 방안으로 고안한 '서자'인 셈이다.

'서자'로 태어난 음주문화연구센터

그동안 재단 이사장은 줄곧 주류협회 협회장이 겸직해 왔다. 협회장은 다름 아닌 국세청 출신이었다. 재단 사무총장 역시 국세청 출신이다. 한마디로 국세청이 재단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재단 이사장과 사무총장 자리에 계속 낙하산을 내려보낸 것이다.

사실 주류업계와 국세청의 먹이사슬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분회(분회장 정철)와 주류업계 공시자료에 따르면 이달 현재 주류업계에 진출한 국세청 퇴직관료는 20여명에 달한다.<상자기사 참조>

이런 가운데 국세청 낙하산 출신이었던 전 재단 이사장은 2010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일산병원에 재단 건물 매각과 알코올환자 치료사업 이전을 제안했다가 노조에 발각됐다. 실제 일산병원은 지난해 8월 재단에 환자증가와 진료공간 부족을 이유로 재단 건물을 매입할 의사가 있다고 공문까지 보내왔다. 매입조건으로는 △의사를 제외한 카프병원에 근무하는 직원 20여명 고용승계 △카프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알코올중독 치료 5년 이상 승계 등이었다. 박은수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일산병원이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예산 750억원을 예비비로 책정한 것은 예산편성지침을 어긴 편법적 예산배정"이라고 지적했다.

일산병원은 그러나 올해 3월 창립기념 행사에서도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건물매입을 올해 핵심과제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재단 이사장이 나서 건물매각 시도

급기야 주류협회는 지난해 10월 재단에 카프병원 사업을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협회는 "병원사업은 선의의 사업의도와는 달리 주류업계가 병 주고 약 준다는 역설적 비판의 소지가 있다"며 "병원사업에 재원이 편중돼 출연의 주목적인 예방·연구사업이 소홀해지고 출연자가 알코올 책임을 자임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단이 출연자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병원사업을 지속한다면 부득이 재단에 출연하는 것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병원사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출연금을 지원할 수 없다고 협박한 셈이다. 협회는 2010년 말 이후 재단에 출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미지급액은 최근까지 100억원에 달한다.

황당한 것은 당시 재단측에 병원사업 중단을 요구한 협회의 협회장과 이를 요구받은 재단의 이사장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협회장이 재단 이사장을 겸직하다 보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재단 관할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8월 재단에 대한 법인감사를 실시한 후 "재단 설립 취지와 목적에 맞게 차기 이사장은 현행 한국주류산업협회장이 재단 이사장을 겸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이사 중 사회적 덕망과 관련 전문성을 겸비한 인사를 선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단측에 전달했다.

매각 운영 발뺌하는 주류협회

 
이런 상황에서도 협회측은 재단 운영과 관련해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협회 관계자는 "협회장이 재단 이사장을 겸직했을 뿐 협회가 재단 일에 관여한 것은 아니다"며 "협회장이 혼자 알아서 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재단이 우리 산하기관도 아니고 법인도 별개"라며 "간섭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매년 50억원의 출연금을 지원하고 병원사업 중단까지 요구한 협회측이 "재단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협회가 재단을 해체하려는 게 아니라 재단 직원들이 해체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사실과 다른 발언도 했다. 재단 직원들은 재단 해체를 막기 위해 2006년 노조를 결성하고 최근까지 400일 넘게 국세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철 분회장은 단체협약이 해지된 상황에서 최근 '나 홀로 파업'을 하고 있다.

이준석 카프병원장은 "재단 건물 매각은 사실상 재단을 없애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종합시스템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세청, 주무관청 변경 시도 의혹

재단은 이미 2005년부터 출연금 불안정을 이유로 재단건물 매각과 병원사업 포기를 시도해 왔다. 정철 분회장은 "2006년 재단 출연금을 전용해 국세청 퇴직관료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한 주류연구원을 설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이때도 출연금을 지급하지 않아 재단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해 투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자 2007년 3월 주류회원사 대표와 주류협회·분회는 "재단에 대한 출연금을 지속적으로 매년 50억원씩 분기별로 분할 지원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국세청은 "출연금 관련 합의내용을 행정지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이 합의서와 국세청의 행정지도 약속은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재단건물 매각시도에 대해 "출연자 협회(주류협회)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국세청이 좋은 의미로 (재단 설립에) 관여했다 쳐도 끝까지 관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단 운영 문제는 노조와 출연자측이 협의할 문제"라며 "주무관청이 보건복지부인데 우리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2007년 당시 국세청이 출연금 관련 행정지도를 약속한 부분에 대해서는 "행정지도라는 것이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출연금에 대한 법적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행정관청에서 돈을 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치료사업 축소의도, 시나리오대로 '착착'

▲ 2005년 12월 국세청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음주문화연구센터 혁신 전략' 문건에는 "재단 주무관청을 보건복지부에서 국세청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그런데 2005년 12월 국세청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음주문화연구센터 혁신 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사진>을 보면 최근까지의 재단 운영 상황이 국세청과 관련한 정황이 적지 않다. 문건에는 재단을 주류종합연구소로 전면 개편하고 "재단 주무관청을 보건복지부에서 국세청으로 변경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재단을 주류 관련 종합 연구·분석 및 국세청 위임사무 집행기관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또 병원사업은 대학병원 등 전문의료기관에 이양하고, 지역상담센터는 점진적으로 축소해 최종적으로 폐지하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최근까지도 이런 시나리오에 기반해 치료사업 축소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준석 카프병원장은 "협회가 병원을 매각하고 새로 세운다는 연구원은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유명무실한 연구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 분회장은 "당초 국세청의 목표는 재단을 만들어 낙하산 자리를 많이 만들고 주류소비자보호 사업은 흉내만 내려고 했는데, 감독관청인 보건복지부가 있고 사업이 번져 나가니 원래 의도와 차이가 발생했던 것"이라며 "재단건물 매각과 재활사업 별도 법인화, 병원사업 포기를 통해 재단을 사단법인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공무원의 양심을 걸고 말하는데, 노조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국세청이 뒤에서 (재단 운영을) 조정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혁신전략 문건에 대해 "그때 (국세청이)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달 3일 재단 이사회 열려


분회는 다음달 3일로 예정된 임시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현재 재단은 전임 이사장이 주류협회 회장직을 퇴임하면서 재단 이사장직도 사퇴해 이사장 궐위상태다. 이사회는 이번 임시이사회에서 신임 이사장과 새 이사를 선출한다.

재단은 올해 2월에도 이사회를 열고 현 주류협회장인 전 국세청 대구청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하려 했다. 하지만 이날 이사회를 참관한 조합원들의 반발과 이사진들의 퇴장으로 이사장 선출안건은 부결됐다. 분회는 국세청 출신 낙하산 인사만은 막겠다는 입장이다.

이사회는 재단 이사장과 감사를 제외하고 14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재단 이사장과 국세청 법인납세국장·보건복지부 질병정책관은 당연직이다. 14명의 이사는 국세청·주류업계를 대변하는 이사 7인, 복지부와 비주류업계 7인으로 구성돼 있다. 재단 이사에는 주류업계 관계자 2명도 포함돼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특수관계자 2명을 의료 및 사회복지관련 전문가로 선출하라"고 시정을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임시이사회에서는 병원사업 포기와 재단 건물 매각 안건이 부결됐다. 그런 가운데 다음달 3일 이사회가 열릴 경우 임기가 끝난 이사들이 교체될 예정이어서 이사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무관청인 보건복지부는 "적절한 이사회가 구성돼 적절한 방법으로 이사장이 선출된다면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재단 건물 매각 시도 등에 대해 "복지부가 법인 허가를 해서 설립된 것이지만 재단 운영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재단은 복지부 산하기관이 아니고 독립된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어떻게 운영했으면 좋겠다 하는 입장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재단의 설립주체인 주류협회와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국세청, 주무관청인 복지부의 공통적인 입장은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일이 아니다"는 것이다.

조성민 중앙중독심리연구소 소장은 "복지부가 절차만 따질 게 아니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며 "최소한 복지부가 의지가 있다면 재단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이사장으로 내려오는 국세청 낙하산이 주류협회장을 겸임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합의로 건강증진기금 부과해야"


분회는 재단을 정상화하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센터 운영을 관리·감독하는 이사회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김애란 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센터가 본연의 공익법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주류협회를 대변하는 특수관계자가 초과해 구성됐던 기존의 이사회 대신 알코올중독 치료에 철학과 의지가 있는 외부 전문가나 사회공공성을 지닌 인사로 이사회를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주류업계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고, 알코올중독자들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조성민 소장은 “기본적으로 알코올중독자의 1차 책임은 원인제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주류면허권을 허가하는 정부에 있다”며 “정부는 특정사업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소장은 “정부는 주류협회가 사회적 약속을 이행하도록 출연금을 안정적으로 납부하게 만드는 강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알코올중독 문제가 소수자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라는 인식하에 정부가 책임을 지고 건강증진기금을 걷어 장기플랜에 따라 알코올중독자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복지부?

그러나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센터는 복지부 산하 공조직이 아니어서 정관 위반에 대한 사후관리 말고는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며 “센터의 향후 운영방안은 정관에 따라 새롭게 구성될 이사회에서 의결을 걸쳐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건강증진기금 부과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가 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알코올 관련 문제가 심각한 데 반해 관련예산이 적기 때문에 주류부담금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와 토론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기금 과세를 추진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음주 관련 예산은 홍보와 교육·알코올 상담센터 운영비를 포함해 46억원 수준이다. 46억원은 주류업계가 재단에 출연을 약속한 연간 50억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알코올중독의 심각성에 비해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복지부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주류협회와 재단 해체 시도를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준석 카프병원장은 "국세청과 주류협회는 처음에 왜 재단을 설립했는지, 이 사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은성 기자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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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업계와 국세청의 먹이사슬 '낙하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분회가 국세청을 상대로 재단 해체 저지 투쟁을 벌이는 이유는 국세청 출신 낙하산인 전 이사장이 재단 건물 매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전 이사장은 임기를 채우고 퇴진했지만 다음달 3일 이사회가 열리면 역시 국세청 출신인 현 한국주류산업협회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분회가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공익 비영리재단인 센터를 사단법인화해서 국세청 산하로 두고 낙하산을 내리꽂는 것이다.

국세청 출신 퇴직관료가 주류업계 임원으로 취업한 사례는 확인된 것만 20여건에 이른다.<표 참조> 주정업체를 비롯해 병마개·판매업체와 사단법인 주류협회·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에 이르기까지 두루 포진해 있다.

2006년 당시 문석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퇴직 국세청 고위간부의 재취업 1순위가 술 관련 단체임을 폭로했다. 문 전 의원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6년 7월까지 공직자윤리법의 저촉을 받는 4급 이상 국세청 퇴직자 52명 중 20명(38.4%)이 주류 관련 단체와 제조·유통·병마개 회사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전 의원은 "국가기관인 국세청이 민간 주류 관련 단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며 "주류 관련 단체로의 재취업을 최소화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류 면허권을 가진 국세청 출신 인사들이 퇴직 후 주류업계에 취업하는 것은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 '전관예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주류업계를 관리·감독하던 공무원이 퇴직 후 반대 입장에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길부 새누리당 의원은 2010년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국세청장이 납세병마개 제조자로 지정한 삼화왕관과 세왕금속공업은 38년 동안 안정적인 독점이윤을 향유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 퇴직자들이 주류 관련 업체에 재취업하는 것은 공정사회 구현에 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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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철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분회장

'골리앗' 국세청과 6년째 싸우는 '다윗'

▲ 조현미 기자
양대 노총 산하 사업장들이 주최하는 크고 작은 집회에 언제나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전당대회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도 어김없이 모습을 보인다. 국세청과 싸우고 있는 정철(57)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서울지부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분회장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9일 저녁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정철 분회장과 만나 6년째 골리앗 국세청과 싸우는 이유를 들었다.

정 분회장의 일과는 서울경찰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집회 일정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노조조끼· 운동화·투쟁 소식지가 양 옆에 꽂힌 책가방이 그의 출근복이다. 하루 세 군데 정도 집회현장을 돌며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배포한다. 덕분에 집회현장에 나오는 경찰들과도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작은 힘이지만 연대도 하고 우리 투쟁도 전파하고 일석이조예요. 세상에 너무 아픈 곳이 많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작은 사업장 소식을 사회에 알릴 수가 없잖아요."

정 분회장은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는 재능교육과 쌍용자동차 집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가장 늦은 시간에 열리는 집회라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앞 1인 시위도 400일째 계속하고 있다. 그는 "국세청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임원들이 주류협회장 등의 자격을 이용해 센터의 병원사업 포기를 종용하고 있다"며 “국세청은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행정지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세청 주도로 설립된 재단의 임원은 항상 국세청 퇴직관료들의 차지였다. 출연금은 주류협회가 조성해 지급하는데, 주류협회장이 센터 이사장을 겸직한다. 공익재단인 센터가 주류업계 입김에 휘둘리는 희한한 구조다. 국세청이 주류협회와 재단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문제는 매년 국감에서 지적되는 사항이다. 정 분회장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낙하산 인사를 관행이라는 이유로 묵인하는 것에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나 “6년간 싸우면서 제도권 친구들은 전부 다 떠났지만 거리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져 감사하다”고 했다. 재단은 지난해 11월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6개월이 지난 지난달에 단협이 해지됐다.

정 분회장은 “재단이 노조 무력화를 통해 센터 파괴 시도를 본격화하고 있다”며 “국민을 상대로 약속한 사회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지면 안 되는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센터는 국내 유일의 알코올 전문기관이고, 선진적인 종합시스템으로 모든 알코올 기관의 모범이 되고 있는데 지금 사업을 중단하면 그간 쌓아 온 노하우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번 투쟁을 통해 사회가 알코올중독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알코올중독은 가족과 사회를 마셔 버립니다. 그들은 대부분 기댈 곳이 없는 소외된 계층입니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센터를 파괴하면 그들을 또 한 번 버리는 겁니다.”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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