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택시업계 노사가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안정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다. 전국택시노조연맹·민주택시노조연맹·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4개 단체는 20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택시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와 국민들을 상대로 고사 직전에 놓인 택시업계를 살려 달라고 호소할 계획이다.

“공로여객 수송의 34%를 담당하고 30만명에 달하는 고용을 창출하는 택시업계가 정부의 무관심과 LPG 가격 폭등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택시노동자는 월 120만원 수준의 저임금으로 평균 5인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극심한 생활고에 직면해 있어요. 어렵기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LPG 운송원가를 감내하기 어려워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문진국(63·사진) 전국택시노조연맹 위원장의 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보문동 연맹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정부 정책 실패로 천덕꾸러기 된 택시업계"

-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택시업계 노사가 대규모 집회를 갖는다. 이날 25만대에 달하는 택시가 운행을 멈추고, 6만명이 넘는 택시노동자와 사용자들이 서울광장에 모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을 요구하나.

“5대 요구안을 정했다. 대중교통 법제화와 LPG 가격 안정화·택시연료 다양화·택시요금 현실화. 그리고 감차 보상대책 마련이다. 지금은 노사 가릴 것 없이 모두 힘들다. 정부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 정부의 정책 실패가 택시업계를 벼랑으로 내몰았다는 말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택시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택시업계는 정부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다. 전택노련만 해도 지난 7년간 줄기차게 ‘대중교통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요구해 왔다.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해 달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국토해양부를 비롯한 정부는 ‘택시는 고급 운송수단’이라는 이유로 제도개선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의 공로 분야 수송률 통계에 따르면 버스(43%)와 택시(34%)의 수송분담률이 압도적이다. 이해를 돕자면 지하철의 수송률은 12% 수준에 불과하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1천150만명의 시민이 택시를 이용한다. 서울시민 전체보다 많은 인원이 매일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다.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분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앙 정부가 직접 지원하기 어렵다면 지방정부라도 나서 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인데,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 정부는 법·제도 개선을 통한 지원 확대보다는 택시요금을 올리는 단기 처방을 선호해 왔다. 이번 결의대회 요구안에도 택시요금 현실화가 포함됐는데.

“택시요금은 2009년 6월에 오른 뒤 지금까지 동결 상태다. 그 사이 물가가 올랐고, 주지하다시피 LPG 가격이 폭등했다. 어느 정도 지경이냐 하면, 노동조합이 택시 사업주를 불쌍하게 여길 정도다. 택시요금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택시 한 대당 매달 20여만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택시요금이 오르면 도미노 식으로 다른 부문의 요금이 덩달아 오를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지만 택시업계의 고사를 막으려면 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하다.”

- 결의대회의 직접적인 배경은 LPG 가격 폭등인데.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2009년 3월 리터당 900원 정도였던 것이 최근에는 1천167원을 넘었다. 곧 1천200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LPG 판매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데다, 이를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는 유명 정유업체들이 가격담합에 나선 결과다. 연맹은 2003년부터 6년간 LPG 가격을 담합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국내 6개 LPG 공급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 1차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2차 소송인단을 모집 중이다.

LPG 가격 부담 때문에 택시업계는 연료의 다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다른 연료를 쓰게 해 달라는 것이다. 안전 문제나 환경오염 가능성 때문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기술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잦아드는 복수노조 후폭풍"

다음달 1일이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지 1년째를 맞는다. 택시업계의 경우 지난 1년간 폭발적으로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이에 따른 노-노 갈등이나 사업주에 의한 부당노동행위 같은 갈등이 적지 않았다.

- 복수노조 허용 1년이 지났다. 택시업계의 경우 한 사업장에 서너 개의 신규노조가 설립되는 등 파장이 컸는데.

“복수노조가 시행된 지난해 7월 한 달 동안에만 전국의 택시 사업장에서 107개의 신규노조가 만들어졌다. 이 중 69개가 이른바 ‘중택’ 노조였다. 전국택시노련 소속도 아니고 민주택시연맹 소속도 아닌 제3의 노조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올해 4월까지 이어지다 최근 들어 주춤한 상황이다. 신규노조가 만들어지는 속도가 빨랐지만 해당 노조가 없어지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 택시업계에서 신규노조 설립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지역본부별로 복수노조 발생이유를 조사해 보니 노조 내 조직갈등 차원에서는 기존 노조에 대한 불만, 전임자 문제, 노조선거 낙선에 따른 신규노조 설립 등이 원인으로 나타났다. 기존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사용자의 개입도 적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 노조가 설립됐든, 노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재정과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새로 설립된 노조들이 이 벽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와해되고 있다. 당초 사용자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노조들도 설립 이후 회사의 도움이 끊겨 무너지고 있다.

연맹을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오려는 조직도 있다. 결과적으로 택시업계의 복수노조 후폭풍은 잦아들고 있다. 하지마 한 번 떠난 조직은 재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연맹의 방침이다."

"남 탓하며 말 바꾸는 한국노총 집행부, 못 믿겠다"

연맹은 한국노총 현 집행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국운수물류노동조합총연합회 소속이다. 양측은 한국노총의 민주통합당 참여를 결정한 정치방침을 놓고 올해 상반기 내내 갈등적 관계를 이어 왔다.

- 한국노총의 정치방침 관련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민주통합당 참여 결정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노조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조활동을 명문화한 규약이 있고, 주요한 결정은 대의원대회라는 절차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한국노총 이용득 집행부가 이 부분을 간과했고 현재의 파탄을 초래했다. 조직의 대표인 이용득 위원장이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지금의 상황을 불렀다.

조직 내적인 이야기를 언론에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오는데 이용득 위원장이 해 온 말들이 있다. 그런데 자신이 했던 말들을 너무 쉽게 번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이용득 위원장은 최근 담화문을 내고 민주통합당 당직을 겸직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담화문의 내용이 명쾌하지 않았다. 담화문 발표에 앞서 진행된 산별연맹 대표자 간담회의 결론은 ‘조직 갈등의 근본원인이 된 정치방침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고 조직적 결의를 받자’는 것이었다. 이 위원장의 담화문에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졌다.

한국노총 역사 66년 만에 처음으로 정기대의원대회가 무산되는 수치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조직의 대표는 개인의 견해를 앞세우기보다는 조직을 추스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정치방침 결정을 둘러싼 조직의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갈등의 핵심을 그냥 덮어 두고 가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거기서부터 상황이 어그러진 것이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다시 모여 결정하자고 하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리더십이다.”

- 임시대의원대회와 정기대의원대회가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국노총은 올해 예산과 사업계획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대의원대회 성사가 중요할 것 같은데.

“대의원대회가 열리더라도 나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이용득 집행부를 신뢰할 수 없다. 한국노총은 물류운수총련 핑계를 대는데, 한국노총 27개 산별 중 물류운수총련 소속 조직은 6개에 불과하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왜 상황이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야 한다. 느닷없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데려와 정신없이 터뜨리듯이 정치방침을 결정한 것 아닌가.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