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첫 번째)이 지난 7일 독일 베를린사회학연구소를 방문해 귄터 슈미트 베를린 자유대학 명예교수(오른쪽 첫 번째)를 만나 독일 고용정책과 노동시장 현황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봉석 기자

[발문] 독일은 최근 유럽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실업률이 낮고, 고용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일자리 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단시간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독일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매일노동뉴스>가 고용노동부와 함께 독일 현지에서 취재한 내용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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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순서]
1. 근로기준법 개정, 이제 시작?

2. 독일 노동시장 현황과 과제

3. 노동시간단축, 독일 고용위기를 넘다

4. 실업급여·실업부조 투 트랙, 취업을 잡아라

5. 근로시간저축제와 노동유연화, 대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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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단축과 노동유연화를 둘러싼 논란은 올해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국제노동기구(ILO) 제101차 총회와 독일 연방노동사회부를 방문한 후 귀국하면서 "올해 정기국회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노동시간은 줄이고, 탄력성은 늘려

이채필 장관이 근기법 개정안에 담고자 하는 핵심 내용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법정근로시간)에 포함하는 노동시간단축 △연장근로 제한을 받지 않는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기간 확대 △근로시간저축휴가제(근로시간계좌제) 도입이다. 노동시간을 현행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전반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제가 없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는 내용은 재계와 경제부처의 반대에 밀려 개정안 제출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탄력근로시간제 확대와 근로시간저축휴가제 도입은 지난 18대 국회에 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노동계의 반발로 통과되지 못했다. 그나마 근로시간 특례업종 축소가 노사정의 논의를 거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 형태로 절충안이 마련된 상태다.

국회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안 논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가 근기법 개정안을 제출하더라도 논의가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장관이 근기법 개정의지를 꺾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장관은 "노동시장의 관행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경제위기나 물량 변동에 따른 생산유연성을 정리해고를 통해 확보했다. 이른바 고용유연성이다. 자동차업계만 살펴봐도 현대자동차가 98년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한국지엠(2001년)과 쌍용자동차(2009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노사 간 극단적인 갈등이 되풀이됐다.

독일의 일자리 기적, 핵심은 노동시간단축

반면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은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통해 고용안정을 확보했다. 볼프강 퓨터(Wolfgang Fueter) 폭스바겐그룹 인사·노동담당 이사는 "근로계약에 경제적인 이유로 고용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고 경영진 역시 해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대신 근로시간저축휴가제와 같이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경기변동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저축휴가제는 연장·휴일근로를 하더라도 그 시간만큼의 임금을 받지 않고 저축해 뒀다가 휴가로 사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휴가를 사용할 때도 적립해 둔 초과근로시간만큼의 임금을 받는다. 폭스바겐은 이 제도를 통해 최대 6개월간 임금을 지급하면서 순환휴직과 같은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독일 정부는 이에 더해 노동시간을 50% 단축하면 임금을 최대 30%(축소된 임금의 60%)까지 지원하는 단축노동 프로그램(Kurzarbeit)을 2009년 도입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고용사정이 악화되자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편 것이다.

해당 제도를 통해 노동자는 기존 노동시간의 절반 가량 일하면서도 임금은 기존의 80%(회사 50%+정부 지원 30%)까지 보장받았다. 독일의 대표적인 가전업체인 지멘스(Siemens)의 경우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감원 대신 1만여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단축노동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고용을 보장하고 위기를 넘겼다.

랄프 브라우크지페 독일 연방노동사회부 차관은 "2009년 독일 경제는 성장률이 마이너스 4.7%에 달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실업률은 불과 0.1%에 오르는 데 그쳤다"며 "독일 정부가 공공기관 투자를 강화하고 노사가 정부의 지원 아래 단축노동(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고용유연성보다 노동시간·임금유연성으로

노동시장정책·이론의 권위자인 귄터 슈미트 베를린자유대학 명예교수(베를린사회학연구소 노동시장·고용 실장)는 독일의 고용정책·노동시장 상황을 설명하면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독일의 노동시장은 전체적으로 실업률이 줄었고 청년 실업률도 안정적이며, 고용은 늘고 고령자의 일자리도 확대되는 등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독일의 일자리 기적'이라는 표현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단시간을 일하면서 저임금을 받는 '미니 잡'(Mini Job) 계층이 늘었고 소득의 양극화가 확대된 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채필 장관은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는 해고가 자유로운 고용유연성을 확보하면서 위기시 시장변동성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경제의 역동성이 장점”이라면서도 “단기적 수익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유럽식 조정시장경제는 인적자원(사람)과 고용안정을 중시하면서 노동시간과 임금의 유연성을 확보한 사례”라며 “독일식 고용정책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만들어졌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리해고(고용유연화)보다 노동시간과 임금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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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기사] "빡세게 일하고, 편히 오래 쉬자"

노동시간 감독 강화하는 노동부

속된 말로 "빡세게 일하고, 편히 오래 쉬자"로 요약된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장하는 노동시간단축의 요지가 그렇다. 이 장관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능하고 일도 잘하는데 생산성은 낮다"며 "(생산성을 계산하는) 분모인 근로시간에 잡다한 시간이 많다 보니 수치상 생산성이 낮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을 줄여 압축적으로 일하고 남은 시간을 근로자에게 돌려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압축근무를 하면 생산성도 올라 임금을 삭감할 이유도 적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장관은 특히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이 준수되도록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나타냈다. 그는 "근기법은 있어도 근로시간 관련 조항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녹슨 시계를 닦고 기름칠해 째깍째깍 돌아가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에도 "근기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말로 감독 강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노동부는 지난해 완성차 공장에 대한 근로시간 감독을 벌여 개선계획서를 받아 냈다. 이달 14일에는 500인 이상 자동차·트레일러와 금속·가공제품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장시간 근로 감독 결과를 발표한다. 일부 지방고용노동청은 근로시간감독 기동반을 구성해 상시적인 감독에 나서고 있다.

이 장관은 최근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독일의 폭스바겐 등 해외 자동차공장을 잇따라 방문한 것에 대해 "(노동시간단축 등 이슈가) 잊혀지지 않고 재인식하도록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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