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기훈 기자

박원순(56·사진) 서울시장이 취임 7개월을 맞았다. 한국사회의 대표적 시민운동가로 서울시장에 당선된 박원순 시장. 그는 지난해 10·26 보궐선거 당시 모든 진보개혁세력의 총체적인 지지를 받았다. 박 시장은 특히 ‘야당·시민사회 정책합의문’을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구체적인 노동공약을 내놓았다. 노동정책 합의문이 나오기까지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노동계와 거의 소통이 없었던 오세훈 전 시장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박 시장의 노동정책은 단순히 ‘서울시 노동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3월 발표한 서울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노사정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매일노동뉴스>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박 시장을 만난 이유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박 시장을 만나 '박원순표 노동정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동자가 인간적 조건에서 일할 수 있어야”

- 박원순 시장의 노동정책과 노동관에 대해 많이 궁금해한다.

“과거에는 우리 사회가 노동운동, 노동자 하면 굉장히 불온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생산성·경쟁력에 저해되기에 노동운동은 억압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런 식의 등식이 행정기관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 대부분은 노동자들이다. 노동자가 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할 수 있고 그것을 보장받는 것이 결국은 행복한 서울시를 만드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억압받고 탄압받던 노동자들이 정당한 시민으로 복권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 취임 7개월을 맞았다. 그간 시정활동을 평가한다면.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첫걸음을 뗐다는 것이 중요하다. 첫걸음으로 기억이 남아 참 좋았다. 비정규직 문제는 월급인상이나 신분안정을 넘어선 문제다. 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갖고 자기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가 분명한 모델을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박원순 시장의 핵심 노동정책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야기로 건너왔다. 박 시장은 이달 1일 서울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1천13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서울시는 기존 정부 비정규직 대책과는 달리 '2년 이상'이라는 기간제한을 두지 않았다. 상시·지속 업무인지 여부만 판단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호봉제 도입·복지포인트·명절휴가비 지급 등 처우개선안도 내놓았다.

“비공식 통계로는 비정규직이 56%나 된다고 한다. 그런 조건에서는 인간이 창조적 활동을 하기가 불가능하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무슨 힘이 나서 일을 하겠나. (옆에 배석한 공무원들 보며) 우리 공무원들 열심히 일해야 한다. 정규직은 그런 사정을 잘 모른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선거운동 중 남산을 걸을 때였다. 한 아가씨가 자신은 학교비정규직 사서라며 다가왔다. 1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다 보니 무슨 계획을 세우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명심해 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입장에 있다면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비정규직 도입 이유인) 경영 합리화에 반대되는 결과 아닌가.”

“서울시 비정규직 대책 정부에 압력 될 것”

-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인 간접고용 대책이 빠져 아쉽다.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직접고용은 직접 전환하면 되는데 간접고용의 정규직화는 힘이 미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다 행사해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현재 간접고용의 정규직화 등에 대해 연구용역 중이다. 나아가 서울시 공사나 용역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해 일반 민간기업의 정규직화까지 유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반기에 간접고용 대책을 발표할 것이다.”

- 서울시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어떤가.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정부 입장에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알고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과거 (정부) 정책 때문에 생겨난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중앙이든 지방정부든 차이 없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당부분은 정부 정책이다. 우리가 조금 업그레이드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의) 반론은 없었고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오히려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가 과감하게 하니까. 다른 지방정부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 최근 민주통합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2014년까지 지자체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서울시 대책이 영향을 줬다고 보나.

“확산효과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달 1일부터 서울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현실화가 됐으니까. 그간 논의가 무성했지만 일단 한 곳에서 해 버리면 가능하다고 본다.”

“노동을 짝사랑 했는데 사랑을 주지 않았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노동계가 적극 도왔다. 노동계와 어떤 인연이 있나.

“과거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많은 노동자를 변론했다. 구로동맹 파업사건이나 서노련 사건을 맡는 등 수많은 노조·노동자 사건을 다뤘다. 늘 노동자 편이었다. 참여연대 시절에도 전노협과 1년에 한 번 정책간담회를 했고, 민주노총 출범 뒤에도 협력적 관계를 형성했다. 오히려 민주노총이나 노동자측이 우리를 멀리 하지 않았나. 노조는 현장중심이나 노조중심주의 때문인지 (시민사회와) 함께하지 않는 것 같더라. 긴밀한 협력을 원했는데 아쉬웠다. 짝사랑을 했는데 사랑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 노동현장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하다.

“주진우 노동보좌관이 매개가 돼 열심히 소통하고 있다. 직접 노조를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이렇게 노조와 만나는 시장은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 노동계 일부에서는 박 시장이 노동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도 한다.

“그런가? 억울하다. 역대 지자체, 중앙정부 기관에 비교해 이렇게 친노동자적인 기관장이 있었나? 너무 자화자찬인가?(웃음).”

- ‘박원순표’ 노동정책을 정의한다면.

“특별한 정책이 있다기보다는 기본과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위상과 권리는 헌법적 권리다. 이를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노사가 협상을 통해 균형을 갖춰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동안 무시됐거나 불온시됐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돌려놓을 것이다.”

 
“노사민정 거버넌스 정상화하겠다”

박 시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시민사회 정책합의문’을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비롯해 노동복지센터 설립·노사민정협의회 내실화·노정협의체 운영 등 많은 노동정책을 약속했다. 얼마나 이행되고 있을까.

- 취임일성으로 협치를 강조했는데. ‘노사민정 거버넌스’(노사민정협의회 내실화)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노사민정협의회는 이미 조례(서울시 노사민정협의회 설치 및 운영조례)로 설정돼 있다. 기구는 있었는데, 실제 운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았다. 이를 정상화할 생각이다. 노사민정협의회 같은 거버넌스 조직이 아니어도 수시로 면담과 의견조율을 하고 있지만 가능한 빨리 정상화하는 게 좋다고 본다.”

현재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서울시 노사민정협의회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열띤 의견수렴 과정에 있다. 과거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둘러싸고 벌어진 상처가 깊은 탓이다.

-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참여하면 제대로 된 노사민정 거버넌스가 구축될 수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민주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노총과도 교류하고 있다. 국민노총에도 문을 열어두고 있다. 모두 함께하면 좋을 것이다.”

“서울시 노동 관련 부서 설치 검토하고 있다”

박 시장은 노사민정협의회 실질화 이외에도 서울시 산하 공기업 노사협의회인 ‘서울모델’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 투자기관 중심으로 운영돼 오던 서울모델 참여구조를 출연기관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서울시가 협의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 협의 내용에 관한 책임성을 높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노정협의체 구성 요구 취지도 적극 반영할 생각이다.”

- 올해 15개의 노동복지센터 설립계획을 밝혔는데.

“노동복지센터를 올해 15곳을 시작으로 내년에 25개 자치구에 1곳씩 교통이 편리한 지하철역 근처에 설치하려고 한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더 많은 노동복지와 혜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노동복지센터를 통해 취약근로계층이 가장 절실하게 생각하는 교육·상담·복지와 노사관계에 이르기까지 역할의 보폭을 넓혀 나가겠다.”

- 최근 25명의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을 위촉했다.

“전국 최초로 출범한 서울시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은 비정규직·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함께 대책을 모색해 가는 일종의 ‘기댈 언덕’의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정부 근로감독관과는 달리 사법적 강제력을 갖고 있지 않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힘들 때는 어려움을 호소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지 않나.”

박 시장은 이와 관련해 “(서울시 직제에) 노동 관련 부서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시의 노동정책과 노사관계는 ‘일자리정책과’ 혼자서 전담하고 있다.

“기관사 건강 위해 ‘최적근무위원회’ 설치”

- 지하철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민주노총 노동절 행사에 참석해 밝힌 그대로다. 노동자가 행복하고 보람 있게,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 위해서는 노동환경 평화와 노사관계 정상화가 전제돼야 한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지하철 해고자들의 복직은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하나의 매듭이었다.”

- 지난 3월 초 공황장애 기관사가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터졌다. 서울시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직원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근무환경을 개선할 때 이처럼 불행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는 (가칭)‘최적근무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다.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에도 ‘최적근무연구소’를 만들도록 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최적의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 서울시에는 공무원 복수노조가 존재한다. 올해 단체교섭 계획은.

“2007년 최초 단체교섭 이후 2009년에 2차 단체교섭이 이뤄져야 하는데, 서울시 복수노조 간 교섭위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교섭이 중단된 상태다. 교섭위원이 구성되기만 하면 서울시는 단체교섭에 성실히 응하고 책임을 다할 것이다.”

“안철수 도울 수도, 안 도울 수도 없는…”

박 시장은 1천만 서울시민의 선택을 받은 공직자이지만 동시에 정치인이기도 하다. 대선을 앞두고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정치인 박원순의 생각은 어떨까.

- 대선을 앞두고 박 시장의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대선이 중요하고 기대하는 바도 있지만 서울시장이란 자리가 중심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서울시장 직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와 관계된 후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길과 전혀 관계가 없진 않지만 서울시장이라는 행정가 직책을 넘어설 수 없다고 본다.”

- 유력한 대권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보면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원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를 안 도우면 배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편으로 민주통합당 당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감도 있다. 지금 후보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관계들이 다 있다. 어느 한 사람을 미는 게 쉽지만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시장이 특정인을 위해 유세하러 다닐 수도 없고. 그런 상황이다.”

-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야권연대에 비상이 걸렸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 민주주의 원칙과 선거의 가장 기본인 공정성이 훼손됐다. 스스로 반성하고, 혁신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다시 지지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상식을 꿈꾼다”

- <매일노동뉴스>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는데.

“세계 어디에도 매일노동뉴스처럼 노동뉴스만을 보도하는 일간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참으로 든든한 응원군을 갖고 있는 셈이다. 매일노동뉴스는 2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노동자의 눈과 귀와 입의 역할을 하며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서울시민을 대신해 감사드린다.”

박 시장은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것이다”고 자신의 좌우명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 30년 시민운동을 해 오는 동안 나를 지탱시켜준 것이 꿈과 희망이었다”며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희망을 품는다면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정치와 서울시정의 모습은 무엇일까.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취임식 때 그가 했던 말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넘어뜨리기도 한다. 물은 시민, 백성이고 배는 정치, 리더라고 했다. 그는 “시민의 마음을 잘 알고 그 민심에 순응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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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56년 경남 창녕 출생이다. 75년 서울대 사회계열 1학년 입학 3개월 만에 고 김상진 열사 추모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4개월간 옥살이를 했고, 제적당했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거쳐 80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82년 대구지검에서 일했고, 83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고 조영래 변호사와 같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맡아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구로동맹 파업사건·보도지침사건·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88년 진보 성향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90년대 초 영국유학과 미국유학을 다녀온 뒤 94년 참여연대를 만들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재벌개혁과 낙선운동을 주도했다. 2001년 아름다운재단·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를 맡았고, 2006년부터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지내면서 나눔과 기부, 지역발전 활동이란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을 선보였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들어 시민후보이자 야권단일후보로 당선되는 저력을 보였다. ‘시민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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