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쌍용자동차 범국민추모위원회가 지난 19일 22번째 정리해고 희생자의 49재를 끝으로 범국민대책위원회로 개편했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추모를 넘어 범국민적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그야말로 한국에서 정리해고가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압축적 사건이다. 처음부터 기술유출을 목적으로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자동차는 지난 2008년 경제위기를 빌미로 자본철수를 했다.

쌍용차의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자본철수가 유리하도록 회계를 조작했다. 정부는 정치적 책임회피를 위해 이를 방관했다. 오히려 책임을 노동자와 금속노조에 돌렸다. 법정관리인과 산업은행은 ‘매각’에 눈이 멀어 정확한 경영진단도 없이 오직 정리해고만을 목표로 경영정상화 방안을 작성했다. 회생법원은 2천600여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포함된 회생계획안을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사측과 회계법인들의 보고서만 가지고 승인했다.

외투기업·정부·회계법인·산업은행·법원 등 한국에서 힘 좀 쓴다는 경제주체들이 모두 쌍용차 정리해고를 위해 똘똘 뭉친 셈이다. 이들이 어떻게 정리해고를 기획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자.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2009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첫째, 유동성 위기. 2008년 12월 쌍용차는 임직원 급여도 지급하지 못한다며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했고, 2009년 1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쌍차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는 2007년부터 현금을 의도적으로 줄였고, 2008년 초에는 2주일치 납품대금에도 모자라는 현금만을 쌍용차에 남겨 놨다. 심지어 중국은행·중국상공은행과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차입약정을 맺었음에도 단 1원의 돈도 가져오지 않았다.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쌍용차의 ‘기획부도’였다.

둘째, 재무위기. 2009년 3월에 쌍용차의 2008년 재무제표가 공개됐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7천억원 순손실에 부채비율은 600퍼센트. 누가 봐도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외부감사를 진행한 안진회계법인이 ‘유형자산손상차손’이라는 영업외비용 항목을 조정해 쌍용차 상태를 부도상태로 보이게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안진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에서 정한 회계기준조차 지키지 않았다. 이후 법정관리 상태에서 한국감정원이 쌍용차 재무상태를 재조사한 결과에 따라 2008년 재무제표를 재조정하면 순손실은 2천억원, 부채비율은 130%로 줄어든다. 재무안전성을 나타내는 부채비율은 한국에서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완성차업체 중 가장 적었다. 순손실은 적은 편이 아니지만 세계 경제위기라는 조건을 감안해야 한다. 쌍용차는 재무위기가 아니라 세계 경제위기로 인한 일시적 적자 상태였다.

셋째, 수익성 위기. 법정관리 이전부터 정부와 상하이자동차는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이 쌍용차의 수익성 문제를 제기했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법정관리 이후 경영정상화 방안을 컨설팅한 삼정KPMG는 2천600명의 인력조정안을 제출했다. 그런데 이 역시 엉터리 보고서였다. 삼정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재무위기에서 찾았는데, 재무위기는 앞에서 말했듯이 잘못된 회계 때문에 발생한 일로 오류였다.

삼정이 조금만 더 쌍용차 상태를 진정성 있게 봤다면 쌍용차 손실이 커지는 이유가 상하이자동차의 먹튀경영 때문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상하이자동차 인수 전 2001~2004년까지 쌍용차 영업이익률은 현대차나 기아차보다 높았다. 그러던 것이 2005년 이후 순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도 대부분 ‘잡손실’, ‘유형자산손상차손’ 같은 상하이자동차 경영행태와 관련한 것들이었다. 쌍용차의 수익성 문제는 상하이자동차의 먹튀경영 효과였다.

넷째, 생산효율성 저하. 삼정KPMG와 삼정보고서를 가지고 계속기업가치를 측정한 삼일회계법인은 생산효율성 문제를 제기하며 미래 수익성 확보를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높은 HPV(차 한 대당 투하되는 노동시간)였다. 하지만 삼정의 HPV 비교는 의도적이라고까지 의심이 될 정도로 쌍용차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성됐다. 삼정은 대형 SUV를 생산하는 쌍용차를 소형차부터 중형차까지 생산하는 타 업체와 단순 비교한 후 쌍용차 HPV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인력을 정리하고 시간당 생산대수(UPH)를 높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필자가 이 HPV를 단순비교가 가능한 공정을 대상으로 SUV만 생산하는 공장들과 비교해 본 결과 결론은 반대였다. 현대차 5-2라인이나, 기아차 광주공장 2라인과 비교해 보면 쌍용차 라인의 생산성은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쌍용차에 필요한 것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리해고가 아니라 적절한 설비투자였다.

올해 초에 열린 쌍용차 해고무효소송 1심에서 법원은 유동성위기·재무위기·수익성위기·효율성 문제 등을 들어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네 가지는 근거가 없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그 시작부터 철저하게 기획된 것이었다. 2심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