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실행해 온 비정규직 정책의 내용과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비정규직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진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스페인은 지난 75년 민주화 이후 발생한 실업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동관련 정책을 도입해 '노동정책 박물관'으로 불린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1일 오후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스페인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행위주체들의 전략'을 주제로 제19회 월례 비정규노동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센터 공동대표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의 발표에 따르면 스페인은 84년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 이후 임시직이 급격하게 팽창해 90년대 중반에는 전체 피고용자의 34.6%까지 치솟았다.

조 교수는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스페인 정부는 노사협약에 기초해 임시직 사용을 규제하고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했다"며 "강력한 사용사유 제한과 기업에게 정규직 전환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정책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책이 가져다준 효과는 예상과 달랐다. 조 교수는 "해당 정책이 시행된 97년과 2005년 사이 임시직 사용규제 및 정규직 채용 촉진 정책의 효과가 사적인 부분에서 나타났지만 공적부문에서는 도리어 역행하는 결과를 보였다"며 "같은 기간 중소기업의 임시직 비율은 43%에서 37%까지 하락한 반면 대기업의 임시직 비율은 25%에서 32%로 도리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석 결과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근(정규직 전환시 인센티브 제공)과 채찍(사용사유 제한)에 대해 중소기업은 정책에 맞게 임시직을 줄이는 경향이 있는데 대기업은 그러지 않고 고용유연화를 우선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중소기업에 대한 강력한 유인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허술한 인센티브 규제로는 대기업의 막강한 욕심을 통제하기 어렵다"며 "자본이 이미 사용사유 제한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만큼 더 강력한 규제를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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