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휠체어 탄 최동운(33)씨가 장애인 활동보조인 전덕규(27)씨와 함께 바람처럼 내달렸다. 느린 건 싫단다. 수업 시간이 코 앞이다. 대학로 노들야학을 향했다. 정기훈 기자
 지난달 20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장애인차별철폐결의대회에서 장애인활동보조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들은 “진짜 사장 보건복지부가 직접 고용하라”, “활동보조인제도 개선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장애인활동보조인제도는 1급 중증장애인 가정에 보조인이 직접 방문해 이용인의 욕구충족과 사회참여를 돕는 서비스다. 2007년부터 시행됐다. 장애인활동보조인 역시 급여를 받는 노동자다.

장애인활동보조인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1일 오후 장애인활동보조인 전덕규(27)씨와 함께했다.

돌고 돌아 지하철역으로

▲ 수유시장 복잡한 길을 헤치고 지하철 타러 간다.
전씨는 지난해 여름 군 제대 직후 위탁기관을 통해 활동보조인 일을 시작했다. 이달로 8개월에 접어들었다. 전씨는 평일에는 오후 6시에서 밤 11시까지, 일요일에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뇌병변 1급 장애인 최동운(33)씨의 이동을 책임진다. 평일 오전과 낮 시간엔 한 연구실에서 공부한다. 오후 5시께 이용인인 최씨의 집이 있는 서울 강북구 수유1동 A아파트 근처인 수유시장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이용인의 집으로 향한다. 이용인은 평일 야학에 다닌다.

전씨의 첫 번째 업무는 이용인의 외출준비를 돕는 것이다. 전씨의 도움을 받은 최씨가 옷을 갈아입고 그날 공부할 거리를 챙긴 뒤 휠체어에 앉는다. 최씨는 전동휠체어를 운전할 수 없어 수동휠체어를 탄다. 최씨가 다니는 노들야학은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이다.

“저상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버스 안전벨트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특히 수동휠체어는 고정이 잘 안 돼요. 흔들리는 버스에서 휠체어를 꽉 잡고 안전바를 잡으면 금세 팔근육에 통증이 와요. 때문에 주로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이날 하늘에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전씨는 불안해했다. 그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땐 더 힘들다”며 “우산을 들 수 없기 때문에 우의를 입고 이동한다”고 말했다. 자칫 빗길에 미끄러졌다가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해야 한다.

최씨의 집에서는 미아역 8번 출구가 가깝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기 때문에 8차선 도로를 건너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내려가면 게이트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더 탄다. 승강장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는 반대편 끝에 있다. 또다시 수십 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전씨는 “휠체어에 탄 사람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 왜 이렇게 만들어 놨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승강장에 도착했다. 전철이 오자 자리를 잡고 능숙하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장애인 이동권, 우리에겐 노동환경 개선”

야학이 위치한 혜화역에 도착했다. 최씨는 “오늘 땡땡이 쳐도 되느냐”고 전씨에게 물었다. 과일주를 좋아하는 최씨는 가끔 술을 마시러 간다고 한다. 물론 이날은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술집이 많지 않잖아요. 1층에 있거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이어야 하고, 내부에 계단이 없어야 해요. 그렇게 간 술집인데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타박하는 주인들도 있어요.”

이용인과 활동보조인은 차별도 함께 경험한다. 전철 안에서 한의학을 공부했다며 최씨의 몸을 주무르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통성기도를 하기도 한다. 전씨는 “저렇게 살아서 뭐하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는데 이런 게 다 폭력”이라며 “처음에는 화도 내고 했는데 편견을 가진 비장애인들에게 설명하고 차별을 함께 느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업무”라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이야기 할 때도 그들은 한마음이었다.

“장애인들은 평평한 도로에서 휠체어를 타고 싶은 거죠. 활동보조인은 평평한 도로에서 휠체어를 수월하게 밀고 싶은 거예요. 장애인 이동권 요구가 우리에겐 노동환경 개선 요구인 겁니다.” 장애인의 권리가 활동보조인에겐 노동권이라는 설명이다.


▲ 노들야학 한소리교실(고등학교 과정)에 모인 학생들이 학급회의를 하고 있다. 동운씨는 부반장을 맡고 있다. 늘 그렇듯 덕규씨도 함께다.

“1%의 우정? 불가능”

야학수업 중에도 전씨는 최씨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전씨는 “이용인한테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해 드려야 해서 계속 옆에 있는다”며 “수학 같은 건 직접 가르쳐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노들야학 고등학교반 부반장이다. 지난 2010년 대입 검정고시도 합격했다.

다음주 월요일엔 최씨네 반이 어린이대공원으로 야유회를 떠난다. 오전에 가는 거라 전씨가 활동보조를 할 수 없다. 이날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고, 야학 선생님이 이동을 도와주기로 했다. 최씨는 “어떤 날은 5시간 기다린 적도 있다”며 장애인콜택시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반장인 김동림(49)씨는 “그 정도면 양호한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서울시내 장애인콜택시가 300대 있는데 오후 6시 이후에는 40대만 다닌다”며 “금요일 오후엔 장애인콜택시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 동운씨 뒷자리가 덕규씨 자리다. 수업은 사정상 취소. 동운씨가 극장에서 본 영화 얘기가 한창이다. 화려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좋아한다고. 물론 덕규씨도 함께 봤다.

전씨가 오전부터 일하는 일요일에는 최씨가 가고 싶은 곳에 간다. 지난주엔 덕수궁에 갔고 이번주엔 전쟁기념관에 가기로 했다. 최씨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영화관에 간다. 극장 내부가 계단으로 돼 있어 휠체어를 아래 두고 전씨가 직접 최씨를 들어서 자리로 이동한다. 극장에 갈 땐 허리에 부담이 된다.

이들은 최근 개봉한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우정을 다룬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 1%의 우정’을 함께 봤다. 그런데 최씨는 “못마땅했다”고 했다. 전씨도 “상위 1%의 부자와 하층민 활동보조인이라는 설정도 비현실적”이라며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관계를 이상화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용인과 활동보조인은 실제로 직장상사와 후임 같은 관계라는 설명이다. 전씨가 “형도 내가 활동을 보조해 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지 다른 건 관심 없잖아”라고 말하자 최씨는 “그건 아니지”라고 웃었다.

쉬는 시간에 최씨는 전씨에게 목이 마르다고 했다. 둘이 함께 야학 근처 편의점에 갔다. 전씨가 빨대를 꽂아 음료수를 줬다. 최씨는 “장애인이 돌아다녀야 세상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인식개선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잘 돌아다니고 잘 먹는 것이 삶의 낙이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 야학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사다달라고 하면 편할텐데 동운씨는 굳이 직접 가겠단다. 자꾸 나가서 돌아다니는건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는 동운씨의 방식이다.

“복지부가 장애인활동보조인 직접 고용해야”

오후 9시30분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최씨는 혜화역 2번 출구 포장마차 앞에서 "닭꼬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전씨는 최씨가 다치지 않게 닭꼬치 꼬챙이를 가위로 잘라 가며 먹여 줬다. 금요일 저녁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다. 전씨는 “전철에 사람이 많아 타는 중간에 문이 닫혀 휠체어가 끼인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날엔 야학 선생님의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토요일은 전씨가 쉬는 날이다. 결혼식은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최씨는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최씨의 외출은 거의 불가능하다.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최씨는 “활동보조인의 노동권이 보장돼야 하고 임금도 인상돼야 한다”며 “장애인이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활동보조인 많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에게 활동보조인은 생존권”이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활동보조인 바우처를 다 못 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활동보조인이 부족한 탓이다.

오후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전씨는 화장실 가는 일을 돕고 이불을 편 뒤 잘 준비를 했다. 11시께 일이 끝난다. 용산에 사는 전씨가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다. 활동보조 일은 팔과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간다. 그는 "몸을 풀기 위해 줄넘기와 철봉 등 간단하게 운동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위탁기관은 파견노동자를 관리·감독할 재원이 없어요.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복지 차원에서 활동보조인을 직접 고용해서 관리해야 합니다. 활동보조인은 휴식시간과 식사시간이 보장되지 않아요. 이용인에게 요구할 수 있지만 그러면 이용인은 그 시간만큼의 활동보조를 받지 못하는 거잖아요. 복지부가 활동보조인을 더 고용해서 보조인의 휴식시간과 식사시간을 보장하고 수급을 원활하게 할 책임져야 합니다.”

전씨는 월 평균 90만원에서 100만원을 받는다. 시간당 6천300원꼴이다. 대부분은 그의 생활비로 쓰인다.

“활동보조인 대부분은 장애인운동 활동가예요. 그만큼 직업으로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일 이상의 것을 요구할 땐 당연히 부담이 되지요. 우린 봉사가 아닌 노동을 하는 거니까요.”


▲ 쉬는 시간 끝. 야학으로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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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활동보조인 시급 4년간 225원 올라
산재보험 적용도 어려워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장애인활동지원제도’로 활동보조 수가가 기존 8천원에서 300원 인상됐다. 또 공휴일·심야 활동보조 이용시엔 시간당 1천원이 추가된다. 2007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가 시행된 지 4년 만에 시급이 300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따져 보면 위탁기관에서 떼는 25%의 수수료를 빼면 사실상 225원이 오른 셈이다.

장애인활동보조인들은 “시급 6천225원은 최저임금보다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장애인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나 부수적인 비용을 고려하면 최저임금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공휴일·심야 활동보조시 1천원 추가 지급은 하루 4시간으로 한정된다. 게다가 이용하는 장애인의 바우처로 지급해야 한다.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활동보조인의 대다수는 40~50대 여성이다. 산재보험을 적용받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기관이 “일하다 다쳤다는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보조인연대는 △복지부 활동보조인 정규직 직접고용 △활동보조인 생활임금 보장 △장애등급에 따른 서비스 이용제한 폐지 및 자부담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동운씨가 웃는다. 덕규씨는 말 없이 뒷자리 오래 지켜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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