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식 일정에 따라 태국노총과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사무소를 잇따라 찾아갔다. 두 곳을 방문하면서 내내 들었던 얘기는 ‘최저임금’에 관한 것이다.

태국의 전체 노동자는 약 3천800만명이며, 대부분 저임금을 받는다. 태국노총은 당시 일급 200바트(원화로 7천600원 정도)인 최저임금을 300바트(1만1천500원)로 올리는 것을 추진했다.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게 태국노총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태국은 초기업노조나 연합단체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조조직률도 1.5%에 불과하다. 노조가 힘이 없으니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는데 역부족인 셈이다. 게다가 태국에 투자한 외국인투자기업들은 공장 해외이전을 경고하며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했다.

이런 여건 탓에 남아시아 국가에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비공식 파업이나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섬유봉제공단에서 일어난 폭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황을 설명한 ILO 아태사무소 관계자는 노사관계 안정과 양질의 노동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ILO 아태사무소는 태국을 비롯한 남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권고하고 있다.

방문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태국 노동상황에 관해 관심을 갖던 차에 최근 낭보가 전해졌다. 지난 4월 태국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일급 200바트에서 300바트로 최저임금이 인상됐다. 태국노총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뤄낼 수 없을 것 같은 최저임금 인상이 정부 주도로 관철된 것이다. 내수 활성화와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다. 무엇보다 민심 이반을 우려한 태국 정부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반쪽짜리였다. 태국 정부는 76개주 가운데 방콕·나콘파톰·논타부리·파툼타니·푸켓·사뭇쁘라깐·사뭇사꼰 등 7개주에서 먼저 최저임금 인상을 시행했다. 애초 태국 정부는 76개주 모두에서 실시하려 했으나 기업주의 반발을 고려해 7개주에서 먼저 실시한 것이다. 태국 정부는 내년 초까지 모든 주에서 300바트로 최저임금을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종전보다 40%가까이 최저임금이 오르는 셈이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파장도 만만치 않다. 태국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이 오른 7개주로 이동하면서 나머지 주들에선 인력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내년 초에 전체 주에서 최저임금이 오르면 이런 현상은 개선될 여지가 있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해 온 외국인투자기업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어찌됐든 태국 정부의 결정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선출문제로 파행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된다. 물론 태국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태국에 비해 우리 노동자의 임금이나 노동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는 태국과 한국의 노동자가 다르지 않다.

현행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전년도에 비해 6% 오른 4천580원이다. 월 단위로 환산하면 약 95만7천원정도 받는다. 이는 지난해 전체 노동자의 월 평균 정액임금(월 234만1천27원, 시급 5천610원)에 비해 절반도 안 된다. 약 200만명의 노동자는 최저임금 수준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전체 노동자 중 적용 대상자는 13%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2.5%만 법정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이쯤되니 아시아·유럽 노동전문가들이 한국에도 최저임금 인상을 권고하고 나섰다. 지난 9일 제4차 아시아·유럽 노동포럼에 참석한 각국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정규 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이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라”고 권고했다. 태국과 같이 우리나라도 소득 불평등과 빈곤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으로 시급 5천600원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경영계는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위는 위원 선출을 두고 갈등이 불거져 양대 노총 소속의 노동계 위원이 빠진 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최저임금위가 회의를 강행하면 최저임금 노동자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할 것이다.

이러니 남의 나라의 일이지만 태국 정부의 결단이 부러워질 수밖에 없다. 태국과 같은 남아시아 국가들은 최저임금위 제도를 갖춘 한국을 부러워하는데 정반대가 된 셈이다. 한국은 제도를 갖추고서도 불능상태에 빠져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데다 정부마저 이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바엔 최저임금위를 통한 최저임금 결정방식을 바꾸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일각에선 국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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