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4·11 총선 결과 새누리당이 의회 과반을 차지했다. 여소야대 국회로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기를 기대한 노동운동 진영에게 총선 결과는 큰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사측과 정부가 한통속이 돼 노조탄압을 일삼고 있는 사업장에서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관계기관이 노골적으로 민주노조를 위협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총선 이후 여러 평가 토론회에서 지적되는 야권 패배의 핵심 원인은 민주통합당의 오만함과 무능이다. 초반 지지율 상승에 취해 새누리당에 비해서도 오히려 구태의연한 선거를 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역시 의석수는 크게 늘었지만, 수도권 선거는 야권연대의 수혜를 얻은 측면이 강하다. 울산·창원 등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점에서 선거 승리로 볼 수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어찌 됐건 총선은 끝났다.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다. 한쪽에서는 다시 반MB연대를 강화하고, 민주당을 혁신해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철수가 조금 더 빨리 야권연대에 들어와 대선 경쟁을 펼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총선이 끝났으니 12월 대선 승리를 목표로 정치적 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와 전략 모두 6개월 전과 비슷하다.

물론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다. 6개월 전에 비해 진보정당은 야권연대 전략에서 중요성을 많이 잃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자체·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와 전국 선거인 대통령 선거는 정치판의 구성이 전혀 다르다. 예전 사례를 봐도 97년부터 2008년까지 진보정당이 지자체 선거,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 적은 없었다. 국회는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고, 안철수나 문재인 등의 야권후보와 비교해도 진보정당 인물 지지도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진보정당을 통해 표현된 노동의제가 앞으로 대선 정치 과정에서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통합진보당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핵심 목표로 삼고, 다른 여러 사업들은 추후로 미뤄 왔다. 하지만 정작 총선 결과 얻은 성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노동의제가 사라진 선거로 인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이후 투쟁의 지지기반으로 삼기도 쉽지 않게 됐다. 뿐만 아니라 당장 전국적 현안으로 부각될 노동시간단축이나 공공기업 민영화 저지·최저임금 인상·사내하청 정규직화·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등에 대해서도 별다른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은 이미 2004~2006년에 과반을 확보한 열린우리당과 10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민주노동당으로도 할 수 없는 것들을 확인했다. 당시 열린우리당보다 개혁적이라 평가할 근거가 없는 민주통합당은 그때보다 의석수가 줄었다. 진보정당 역시 3석이 더 늘긴 했지만 득표율도 조직적 지지도도 당시보다 줄었다.

그에 반해 2012년 4월 한국은 정리해고로 노동자와 그의 가족 22명이 죽어도 정부 대책 하나 나오지 않는 나라다. 법원이 판결해도 사측이 모르쇠로 일관하면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임금착복·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나라다. 복수노조 관련법을 어용노조 지원법으로 탈바꿈시켜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을 공장 밖으로 내모는 나라다. 민주노총마저 이들 노동자와 함께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다시 한 번 고도성장의 달콤한 환상이거나, 대기업 사장보다 덜 나쁜 중소기업 사장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바라볼 곳은 국회가 아니라 지역에서, 현장에서 다시 기세를 모아 싸울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조 진영이 지금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어차피 별다른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할 대선이 아니다. 현실적인 정치적 힘도 없는 상태에서 겉만 번지르르한 대선 전략은 노동자들을 선거로부터, 진보진영의 정치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게 할 것이다.

민주노총이,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시급히 토론해야 할 것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전국의 민주노조 사수 투쟁, 사내하청 정규직화 투쟁, 4월 말부터 시작될 임단투, 5월부터 불붙을 KTX 민영화 저지투쟁, 6월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될 노동시간단축 제도개선 투쟁, 하반기로 예상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투쟁이다. 이 모든 사안들을 어떻게 모아내고 자신감 있는 전국적 싸움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총선 이후, 다시 민주노조답게 싸워 나가자. 총선 과정에서 쌓인 앙금은 털어내고, 다시 단결해 싸울 수 있는 방도부터 찾아보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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