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은 4·11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전태일의 여동생을 비례대표 1번,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이던 노동연구원의 연구자를 비례대표 3번에 배정했다. 이들은 국회의원이 될 것이 확실하다. 물론 전태일의 동생이라는 ‘혈연’과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노동연구자라는 ‘학연’이 노동공약의 실현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과제를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이 노동 관련 후보를 1번과 3번에 전격 배치하면서 ‘전태일과 노무현의 만남’을 내세운 통합진보당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또한 비례대표 후보의 당선 가능권인 11번과 12번에 한국노총의 현역 간부 2명을 배치함으로써 노동의 색깔을 더욱 강화했다.

이들의 미래가 ‘조직 플레이’보다는 ‘원맨쇼’로 끝난,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된 한국노총 4인방의 운명과 다를지 같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선 확실권인 20번 안에 노동운동가와 노동 관련 인사를 4명이나 배정한 것은 분명히 파격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우회전’해 온 통합진보당

그런데 민주노동당을 계승한다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배정을 보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당 안에서 얼마나 푸대접을 받고 있는지 드러난다. 1번이 농민, 2번이 중소업체 대표, 3번이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4번에 가서야 전교조 위원장 출신의 정진후씨가 교육계를 대표해서 배정을 받았을 뿐, 5번은 환경단체 출신이고, 6번은 시민운동 출신이고, 7번은 장애인이다. 노동운동가인 이영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나순자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8번과 11번에 배정됐다.

이로써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가운데 당선 가능한 노동계 인사는 최대로 잡아야 3명이고, 확실하게는 1명뿐이다. 혹자는 당원 총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한 비례대표 결과라고 강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선 가능권인 3·4·5·6·7번을 노동계가 아닌 다른 부문으로 미리 정해 놓은 점과 인터넷 투표 과정에서 벌어진 비상식적인 행태를 볼 때 과연 현행의 당원투표 제도가 노동자 정치세력화 복무라는 운동적 과제에 충실했는지, 그리고 당내 선거의 진행 절차와 과정이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이뤄졌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 배정에서 노동계를 ‘존중’했고, 통합진보당은 ‘무시’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사실 ‘노동 해방’이 아닌 ‘노동 존중’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없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4·11 총선에서 반(反)이명박 과제가 공세적이 될수록 노동자 정치세력화 과제는 수세적이 돼 왔다. 통합진보당은 총선 목표로 원내교섭단체를 내세우고 있는데, 그 목표의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민주노동당의 역사적 소임을 계승·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결합한 중도 정당으로 우회전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당내 논쟁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현재 당내의 세력 판도와 민주노총의 상황을 볼 때 전자보다는 후자의 진로가 우세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전략 새로 짜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2012년 총선은 2008년 총선보다 어두워 보인다. 한국노총 지도부가 새누리당(옛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끊은 게 그나마 나은 모양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면서도 내심 못마땅한 게 많다. 민주노총 차원의 총론이 없는 가운데 산별조직들이 자기 요구를 중심으로 통합진보당을 통해 각개약진하는 모양새다.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끌어내리는 과제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야권연대 전술은 올바르다. 문제는 이 전술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에 어떻게 복무하느냐다. 한국노총은 보수정당을 통한 미국식 대리주의를 택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독자적 세력화를 위해 노동당을 만들었으나, 그 노동당은 내부 분열로 쪼개지고 자유주의 정당과 합치더니 지금은 통합진보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도정당화되고 있다.

총선을 거쳐 대선으로 갈수록 이명박 정권 반대의 목소리는 커질 것이고, 거기에 비례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목소리는 작아질 것이다. 이 딜레마의 해결은 좌초 위기에 처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략적 과제를 새로 짜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 시작은 사회적·운동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자기혁신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인간해방과 노동해방을 향한 노동자 정당의 성장을 바라는 이들의 고민이 깊은 요즘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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