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지난주 상장기업들의 사업보고서가 금융감독원에 제출됐다. 한국 재벌 순위 1·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실적을 통해 잠시 재벌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

지난해 삼성전자는 120조원 매출에 11조원의 영업이익을, 현대차는 42조원 매출에 4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두 회사가 지배하는 종속회사들을 합하면 삼성전자는 165조원 매출에 16조원의 영업이익, 현대차는 77조원 매출에 8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룹 차원으로 확대하면 액수는 더 커진다. 삼성그룹은 183조원 매출에 15조원의 영업이익을, 현대차그룹은 132조원 매출에 11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두 기업의 매출 총액은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예산 총액의 84%에 달한다. 두 재벌그룹이 굴리는 돈이 정부에 못지않다.

두 기업은 모두 2008~2009년 경제위기 이후 급성장했다. 2007년 삼성전자와 그 종속회사들은 98조원 매출에 9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다 경제위기를 거치며 2011년까지 매출은 74%, 영업이익은 77%가 늘어났다. 현대차와 그 종속회사들 역시 2007년 69조원 매출에 3조원의 영업이익에서 매출은 12%, 영업이익은 166%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 경제성장률이 12.4%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성장속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두 기업은 경제위기를 거치며 한국경제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했다.

두 기업이 국내에서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는 삼성전자가 10만명, 현대차가 5만7천명이다. 2007년 말에 비해 각각 19%, 3% 늘어난 수치다. 삼성전자는 얼핏 크게 고용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매출과 이익이 갑절씩 늘어난 것에 비하면 고용증가율은 사실 낮다고 봐야 한다. 사실상 고용증가가 없었던 현대차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두 기업의 고용 증가가 더딘 이유는 해외공장과 외주화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인 휴대폰은 국내에서 20% 미만만 생산된다. 나머지는 베트남·브라질 등에서 만들어진다. TV는 국내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대부분을 생산했던 반도체와 LCD패널 역시 내년부터는 상당량이 중국에서 제작된다.

현대차는 2010년부터 국내외 생산비중이 역전돼 지난해에는 전체 차의 54%가 국외에서 생산됐다. 지난해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이 시작됐고, 올해와 내년에는 중국에서 생산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본사가 한국에 있지만 두 기업은 생산과 고용 면에서 보면 더 이상 한국 기업이 아닌 셈이다.

지난해 배당금을 보면 삼성전자가 8천200억원, 현대차가 4천800억원이다. 지난 3년간 배당총액은 삼성전자 3조5천억원, 현대차 1조2천억원이었다. 모기업과 그룹 계열사에서 이건희 회장은 총 285억원의 배당을 받았고, 정몽구 회장은 456억원의 배당을 받았다.

물론 재벌 가족들이 가져가는 돈이 배당뿐인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임원 급여가 평균 109억원이고, 현대차는 21억원이다. 이들의 가족들은 통상 십수 개의 계열사에 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배당 이상의 수입이 임원 급여로 들어온다. 한국 국민들의 1인당 소득이 2천500만원 정도이니 재벌 총수는 보통 국민 2천~3천명분의 연소득을 거둔다. 물론 이것도 각종 재산 소득을 제외한 액수다. 재벌 가족 10여명이면 웬만한 소도시 인구 전체보다 수입이 많다는 이야기다.

한편 현대차가 삼성전자보다 절대액으로 유일하게 앞서는 것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니라 1인당 연평균급여다. 평균 근속연수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근속연수는 8.2년, 현대차는 17.6년이다. 그리고 삼성전자 근속연수가 이렇게 짧은 것은 무노조 효과 때문이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사측과 집단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철저히 개별적 관계를 맺는다. 사무직 노동자들은 무한경쟁을, 생산직 노동자들은 최고의 노동강도를 견뎌내야 한다. 남들은 최고의 기업이라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삼성 노동자들은 8년 이상 같은 회사에 있을 수가 없다.

반대로 현대차는 한국의 대표 노조 중 하나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매년 임단협을 체결한다. 노동자들이 개별적 노사관계가 아니라 집단적 노사관계를 중심에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과 노동조건에 관한 싸움을 작업장에서부터 부족하게나마 진행해 나간다. 물론 현대차 사측은 언제나 삼성전자 식의 노사관계를 지향한다. 아직 이를 자기 사업장에서 실행할 길이 없어 몇 년 전부터 발레오만도·유성기업 등 부품사 노사관계에 개입하면서 민주노조 파괴 지향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정리해 보자. 단 두 명의 재벌 총수가 정부 수준으로 돈을 굴린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적 경제위기 시기에는 돈을 더 번다. 각종 정부 지원으로 커 왔고, 위기시에는 세금으로 더 큰 이득을 얻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고용에 크게 기여하는 바가 없다. 재벌 가족 10여명이 중소도시 규모의 수입을 올리며, 자신들의 왕국에서 노동조합은 가능한 허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정말 어마어마한 권력이다. 몇 가지 정책 제안으로 이들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올해 내내 재벌들을 노동자의 심판대에 세우는 민주노조의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노동자 단결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가 관건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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