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출근하면 병동이 엉망이에요. 가래침이나 피를 닦은 거즈나 가검물, 주삿바늘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요. 서울대병원에서 14년째 청소일을 하고 있는데요.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병원 청소가 어떤 일인지도 몰랐죠. 그저 집안청소 하듯이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가검물이나 피 묻은 거즈 같은 것도 일반쓰레기 치우듯 했고요. 주삿바늘에 찔려도 집에서 바늘에 찔린 것처럼 툭툭 털고 다시 일하고….”<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이영분(56)씨>

지난해 잇따라 터진 병원 청소·간병노동자들의 주삿바늘 사고로 이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병원 내 노동환경을 개선해 감염위험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요구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들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할 주체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등 정부 관계부처나 병원에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들은 왜 감염의 공포 속에서 불안에 떨며 일해야 할까.

병원 청소노동자 66.3% “주삿바늘 사고 경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지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병원 청소노동자 1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6.3%가 주삿바늘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98.8%가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환자로 인한 병원 감염 여부의 경우 14.3%가 감염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사고를 당하면 대책 마련은 주로 파견업체(53.6%)가 담당했다. 청소노동자 본인(13.7%)이 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경우(14.9%)도 적지 않았다.

이영분씨는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몸서리를 쳤다. 병원이나 용역업체 모두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한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병원에 있는 모든 것들이 청소하는 사람들 손을 안 거치는 게 없다”며 “그런데도 병원이나 용역업체는 깨끗하게 청소하라고만 했지 위험에 대해 교육해 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병원체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작업을 하는 경우 감염병의 종류와 원인을 근로자에게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하청업체 근로자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에이즈환자 주삿바늘 찔렸을 때 끔찍”

“지난해 7월 피부병을 앓고 있는 84세 남성을 간병했어요. 병이 옮을까 봐 불안하긴 했지만 최대한 조심해서 간병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몸에 땀띠 같은 게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병원에 가 보니 옴이 옮았다고 하더라고요. 더운 한여름에도 비닐로 꼼꼼히 가렸는데도 어느 틈에 전염된 겁니다. 그 후 에이즈환자의 간병을 맡았죠. 정말 조심했는데 어쩌다 주삿바늘에 찔리고 말았어요.”<서울대병원 간병인 이기숙(62·가명)씨>

에이즈환자에게 사용했던 주삿바늘에 찔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또 있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서기화(56)씨는 “지난해 9월 에이즈 환자 방을 닦다가 마포걸레에 걸려 있는 주삿바늘에 찔렸다”며 “너무 무서워서 바늘에 찔린 두 번째 손가락을 끊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런 사례는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지부가 같은 기간 간병노동자 2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5%가 "환자로 인해 감염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보호구 지급은 27.8% 수준에 머물렀고, 위험에 대한 고지는 35.4%만 받았다고 답했다. 50%의 간병노동자가 안전보건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들 중 94.6%가 노조에서 교육을 받았고 병원에서 받은 경우는 1.8%에 불과했다.

안전보건교육만 제대로 해 줬어도…

병원 청소·간병노동자들은 "안전보건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설사 사고를 당했어도 그렇게 두려움에 떨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에이즈환자 간병 중 주삿바늘에 찔렸던 이기숙씨는 “(찔리는 순간)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며 “노조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나서야 다소 나아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래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병원에서 사용하는 주삿바늘은 ‘위해의료폐기물’에 해당한다. 의료폐기물은 전용용기에 넣어 내용물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보관해야 하고, 의료폐기물 투입이 끝난 전용용기는 밀폐해서 포장해야 한다. 이를 적용하면 서울대병원은 법령 위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배상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손상을 입더라도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대병원 간병노동자 박아무개(64)씨는 “지난해 10월 병실에서 에이즈환자에 사용된 주삿바늘에 찔려 검사비용과 치료비용이 60만원이나 들었다”며 “병원에 치료를 요구했지만 병원 과실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위로금을 준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위로금보다는 병원에서 책임지고 치료를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노동자 보호책임, 병원에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지난해 사고 이후 감염위험이 큰 특수병동에는 안전주삿바늘통을 사용하도록 조치했다”며 “간호·청소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들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간병인은 병원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병원측의 이 같은 입장은 간병인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간병노동자의 경우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적용이 배제되는 가사사용인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간병노동자는 법정노동시간 준수와 최저임금법 적용, 휴일·휴가·퇴직금·수당은 꿈도 꿀 수 없다. 더구나 결핵·독감·간염·피부병 등 호흡기나 접촉을 통한 감염에 노출돼 있다.

“바닥 청소할 때 세제 때문에 넘어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요. 그러면 무급휴가를 내야 합니다. 자기 돈으로 고치고 나서 다시 들어와요.”<고려대 청소노동자 윤명순(64)씨>

윤명순씨는 "법과 제도를 바꿔서 병원 청소노동자도 밝게 웃으면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권미란 나누리플러스 활동가는 “병원이라는 특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작업환경에서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그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며 “위험의 제공자는 병원이라는 직장이므로 병원은 노동자에게 위험에 응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은 다른 어떤 곳보다 감염의 위험이 높은 직장이기 때문에 이익을 보는 사업주가 예방책임을 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공공운수노조는 다음달께 병원 내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시정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노조 관계자는 “병원측과도 협의를 하겠지만 변화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법 개정을 하거나 정부를 통해 압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병원노동자 안전보장 위해 의료법 개정해야”

의료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의 장은 병원감염 예방을 위해 감염관리위원회와 감염관리실을 설치·운영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정훈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의료법 취지에 비춰 볼 때 감염위험에 노출돼 있는 청소·간병노동자에게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감염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적극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병원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의료법 시행규칙(제43조)에 감염 보호대상으로 명시된 ‘직원’이라는 단어를 병원 내 모든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을 포함하는 ‘보건의료종사자’라는 단어로 바꾸는 방식의 의료법 개정을 주문했다.

[상자기사] '건강권 사각지대' 놓인 간병노동자

간병노동자들은 감염사고를 당해도 치료와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에 고용되거나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현실적으로 건강에 대한 권리는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권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윤 극대화의 논리 속에서 고용이 유연화돼 청소노동자들은 간접고용의 형태로 노동하게 됐고 간병노동자들은 간호서비스를 개별 환자에게 떠넘기는 현실 때문에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이 특수하거나 보호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제도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감염사건은 유엔사회권규약 가입국인 한국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간병노동자의 산재 예방과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제한하는 차별적인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