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1963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 땅값은 1천176배, 대도시 땅값은 923배 올랐다. 짜장면·삼겹살·청바지·버스비 등의 가격을 기준으로 한 소비자물가도 43배나 뛰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노동자 임금은 15배 오르는 데 그쳤다. 노동자 임금인상 속도가 의식주 비용이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살림이 팍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업장 단위 임금인상의 폭도 제한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용자들은 기본급 인상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기본급 인상은 기본급을 토대로 지급되는 각종 수당의 인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급 인상을 자제하고 각종 명목의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이 국내 상당수 사업장의 임금교섭 패턴으로 고착화됐다. 노조들은 기본급 인상이라는 임금협상의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수당 확대를 통한 총액 인상이라는 우회로를 가기 시작했다. '문짝수당'이나 'CCTV 수당'과 같은 생소한 이름의 수당들이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졌다.<상자기사 참조>

하지만 수당 늘리기 방식의 임금인상도 곧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한 자릿수(9.8%)로 내려앉았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8%까지 치솟았던 노조 조직률이 급기야 10%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자고로 노조의 힘은 ‘머릿수’에서 나오는 법이다. 노조의 외연이 줄면서 우리나라 노조들이 조직력과 교섭력의 동반 하락이라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교섭을 통해 임금을 올릴 여지가 줄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당 늘리기' 식 임금협상의 한계

노조들은 기존 수당 늘리기 식 임금협상의 약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수당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 결과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2003년부터 약 3년에 걸쳐 진행된 서울 시내버스노조들의 통상임금 소송은 그 시발점이 됐다.

당시 몇몇 버스노조들은 근속수당과 교통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그러자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시내버스업체의 노사도 자사 임금협상에 소송 결과를 반영했다. 근속수당과 교통비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자 자연스럽게 버스기사들의 임금이 올랐다. 더 나아가 각 버스업체 노사는 매년 기본급이 자동으로 인상되는 호봉제를 도입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통상임금 소송이 안정적인 임금체계 도입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그 뒤 소방공무원과 지방자치단체 청소노동자, 제조업체의 생산직과 대기업 사무직 등 다양한 직종의 노조들이 잇따라 통상임금 소송에 뛰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통상임금이란 무엇인가.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는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일급 금액·주급 금액·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통상임금은 해고예고수당과 유급휴일임금, 연장·야간·휴일 가산임금, 연차유급휴가수당, 산전후휴가수당 등을 산정하는 기초가 된다.

월급제 사업장에서 ‘통상시급’을 구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월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임금액 전체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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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통상임금 산정기준시간수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산정기준시간수’다. 토요일이 무급휴일인 경우 산정기준시간수를 구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근무일 40시간+유급휴일 8시간)÷7일×36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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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개월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토요일 무급휴일인 경우 산정기준시간수는 209시간이다. ‘토요일 4시간 유급’인 경우 226시간, ‘토요일 8시간 유급’인 경우 243시간이다. 이제 통상시급을 구하는 공식을 생각하면서 산수를 하면 된다. 분자인 통상임금 합계액이 일정할 경우 분모인 통상기준시간수가 짧을수록 통상시급이 커진다. 따라서 통상시급을 구하는 데 있어 토요일이 무급휴일인 경우가 노동자에게 더욱 유리하다. 임금지급 방식이 시급제라면 그 반대다. 시급제의 경우 통상시급이 이미 고정적으로 결정돼 있기 때문에 토요일이 유급휴일이어야 유리하다.

금속노련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의 핵심쟁점으로 ‘통상임금 산정기준시간수 변경’을 꼽았다. 산정기준시간수를 ‘174시간 또는 209시간’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맹은 “주 40시간제 취지에 맞게 통상임금 산정시간기준수를 축소하거나 실근로시간인 174시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통상시급을 계산할 때 모수가 되는 산정기준시간수를 줄여 통상시급을 높이고, 이를 통해 각종 수당이 인상되는 효과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노조 간부들조차 통상임금 산정기준시간수 계산을 못해 무조건 ‘209시간’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근무체계에 따라 산정기준시간수가 다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복수노조 조직경쟁 수단으로 떠오른 통상임금 소송

통상임금 소송은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노조들의 조직확대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지난해 장기파업 사태를 겪은 인천삼화고속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복수노조가 시행된 뒤 신설된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삼화고속지회는 ‘근속수당·교통비·CCTV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에 나섰고,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은 지회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3가지 수당을 통상임금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 기존노조와 회사측의 합의에 대해 “제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급여의 성질에 따라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노사합의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소송을 통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할 경우 소송을 승리로 이끈 노조는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고 통상임금 소송이 노조의 조직 확대를 위한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1일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가 시행된 후 올해 1월 말까지 676개의 노조가 설립됐다. 이 중 무노조 사업장의 신설노조는 22.5%에 그쳤고, 양대 노총에서 분화한 신설노조가 68.8%에 달했다. 특히 양대 노총에서 분화한 신규노조 상당수는 버스·택시업종의 영세노조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새 노조가 기존노조의 단체협약을 부정하면서 통상임금 소송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조직확대라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조직경쟁 과열 양상으로 번질 개연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통상임금 소송이 임금인상의 보조적 수단으로는 유의미하지만, 조직확대 수단으로는 장·단점을 모두 안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가 내주는 '보험료'까지 통상임금으로 본 법원

통상임금 소송의 증가는 ‘임금’의 법률적 성격을 확고히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법원은 ‘노동의 대가’로서의 임금과 ‘복리후생비’ 명목의 임금을 구분하는 임금이분설을 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동자가 파업을 벌이더라도 복리후생비 명목의 임금은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95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파업기간 중의 정근수당 지급 요청 사건'에서 임금이분설에 기초한 기존 판례를 번복하고 “노사 간 단체협약 등 자율적 협의나 임금지급에 관한 관행이 없는 한 쟁의기간 중의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며 무노동 무임금(No Work No Pay) 원칙을 선언했다. 이 판결은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전부 노동의 대가로 봐야 한다"는 해석을 낳았다. 개별 노동자의 임금을 충실히 보장하는 이론적 시초가 된 것이다. 이 같은 법리에 따라 법원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수당 대부분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노사합의에 따라 회사가 대신 내주는 개인연금보험료나 직장단체보험료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까지 나왔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법 제2민사부(재판장 황병하 판사)는 한국지엠 사무직 퇴직자 7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에서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된 휴가비·귀성여비·가족수당·조직관리수당·조사연구수당·개인연금보험료·직장단체보험료는 통상임금 산정에 포함되는 임금”이라며 “회사는 이들 수당을 포함해 임금과 퇴직금 등을 재산정하고, 미지급된 금원과 지연손해금을 퇴직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들 수당이 실비변상이거나 복리후생성 은혜적 금품이기 때문에 임금이 아니며 통상임금 산정에 포함될 수 없다는 회사측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상임금 산정의 핵폭탄 '정기 상여금'

통상임금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법원과 달리 고용노동부는 88년 만들어진 예규에 따라 "근로시간과 관계없는 생활보조적·복리후생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유지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과 배치된다.

법원이 누적된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고 있는 가족수당이나 식대·근속수당·교통비 등을 노동부는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철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참터)는 “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은 가족수당이나 식대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식별표대로 판단할 뿐”이라며 “노동부가 예규를 고수하는 배경에는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을 낮춰 주는 방법으로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달 인천지법 제11민사부(재판장 송경근 판사)가 눈에 띄는 판결을 내놓았다. 국내 주요 완성차업체 중 한 곳인 한국지엠 생산직 노동자 5명이 제기한 임금소송에서 재판부는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법원은 1년에 한두 번 나오는 효도제례비나 연말소통장려금 등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정작 분기별 또는 2~3개월에 한 번씩 지급되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고수해 왔다. 특히 대법원에서 유사 판결이 이어지자 ‘상여금≠통상임금’ 공식이 고착화되는 듯했다.

그런 가운데 비록 하급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기존과는 다른 판결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는 앞으로 통상임금 소송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액수가 큰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이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각종 급여의 액수는 껑충 뛸 수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만만찮다. 노동계의 집단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와 한국지엠지부가 각각 2만8천명과 1만명 규모의 집단소송에 나선 상태다. 자동차노련 소속 대전지역 13개 버스회사 노동자 1천352명도 정기 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을 요구하며 소송을 벌이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자기사] ‘CCTV 수당’과 ‘문짝수당’을 아시나요?

CCTV 수당은 버스 노동자들 사이에서 ‘삥땅 방지 수당’으로 통한다. 운송수입금 횡령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차 안에 CCTV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버스 노동자들은 일하는 내내 감시를 받는 입장에 놓였다. 노동자들은 심리적인 위축감과 불안감을 감수해야 했고, 사용자들은 불안한 근무환경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CCTV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버스운전자의 근로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해당 노동자의 근무형태를 직·간접적으로 규제하는 데 대한 금전보상의 성격이 강하다. 법원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고 근로의 대가성이 강한 CCTV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짝수당 역시 버스업계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수당이다. 예전에 차장이나 안내양이 하던 버스출입문 개폐업무를 요즘에는 운전기사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이에 버스 노사는 협상을 통해 문짝수당을 신설했다. 운전기사의 노동강도가 높아진 데 대한 보상 차원이다.

현재 춘천의 한 시내버스노조가 문짝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대법원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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