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참석을 희망했던 한 노동자는 끝내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그는 함께했던 이들의 손에 들려나온 영정사진 속 주인공이 돼서야 자신의 주장을 세상에 외칠 수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고 김주현(26)·이숙영(31)·연제욱(27)·황유미(23)·황민웅(32)·김경미(29)씨….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흑백 영정사진으로 그의 옆에 서 있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는 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한 뒤 유방암으로 사망한 김도은(36)씨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청구(산재신청)를 한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사망한 김씨는 생전에 이날로 예정된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산재 신청 기자회견' 참석을 희망했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김씨는 19살인 지난 95년 삼상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4년9개월간 반도체생산 임플란트 공정에서 일했다. 2000년 퇴사한 김씨는 결혼생활 중인 2009년 8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절제술까지 받았으나 암세포가 뼈와 간에 전이돼 끝내 숨졌다. 김씨는 삼성반도체 출신의 다른 피해자 소개로 반올림을 찾았으며 지난해 11월부터 산재 신청을 준비해 왔다.

반올림은 "김씨는 삼성반도체 근무시 유방암 유발 유해인자로 지목되는 방사선·벤젠 등 유해물질에 노출됐다"며 "유방암 수술을 담당한 주치의도 삼성전자 업체에서의 근무여건과 유방암 발생 인과관계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밝혔다.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충분하므로 산업재해를 신속히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반올림은 "반도체와 관련한 직업병 피해제보는 155명으로 이 중 61명이 사망했으며 22명이 산재 신청을 했으나 18명은 불승인되고 4명은 심의 중"이라며 "삼성과 매그나칩 등 반도체 자본은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한편 반올림은 이날 저녁 서울역 광장에서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은 2007년 3월6일 스물 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삼성반도체 생산직 노동자 고 황유미씨의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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