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에버랜드에서 일하던 스물다섯 살 사육사가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패혈증으로 숨져 논란이 되고 있다. 유족은 "김씨가 입사 후 살이 10킬로그램이 빠질 만큼 장시간노동을 해 과로로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 가운데 사망 직전 동물원 철창에 얼굴이 찢겨 상처가 났었다"며 "업무상재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은 "고인이 동료와 회사 밖에서 술을 마시다 다쳤고 위법한 근무나 과로도 없었다"며 "상처가 패혈증에 이르러 사망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왜곡"이라는 입장이다. 유족은 조만간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고인의 노동과정과 상처발생 경위·패혈증 발병원인 등에 대한 조사가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치과기공사, 원인불명 패혈증으로 숨져

똑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고인처럼 젊은 나이에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패혈증으로 숨져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어 판례를 소개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법원은 과로로 인해 신체의 저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다른 원인으로 패혈증이 초래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상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아무개(37)씨는 치과에서 치과보철물을 제작하는 치과기공사로 일했다. 보철물 연마기계인 그라인더로 치아보철물을 제작하거나 기존 보철물을 수리했다. 그가 일하던 곳은 작은 창문이 있었지만 환기시설이 없었다. 작업장은 환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항상 화공약품과 그라인더 냄새가 났다. 기존보철물이나 구강을 본 뜬 모델을 소독하는 기구도 없었다. 신씨의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였다.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지만 업무특성상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초과근무가 적지 않았다. 그러던 신씨는 출근 후 작업준비를 하다 갑자기 고열증상이 발생했고, 진료를 받은 후 귀가했다. 하지만 다시 같은날 고열이 발생하자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은 패혈증과 급성간부전 등의 진단을 내렸고, 신씨는 이틀 만에 숨졌다.

사망 직전 신씨는 추석 명절을 전후해 제작의뢰가 늘어 3주일 동안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으며, 주말조차 쉬지 못했다. 망인은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았고, 매일 반 갑 정도 흡연을 했다. 망인은 사망 당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건강검진에서도 질병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16차례 급성 후두염과 자극성 접촉피부염 등 세균성 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유족은 "작업환경이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고, 과로 등으로 면역기능이 저하된 가운데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발병원인이 패혈증으로 진행돼 신씨가 사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 "패혈증 일으키는 원인 발견되지 않아"


반면 공단은 "과로는 인정되나 치과기공업무가 세균에 노출되거나 감염 위험성이 있는 업무가 아니고 패혈증을 일으키는 원인도 제공하지 않았다"며 "망인이 재해 발생 전부터 세균성 질환을 앓은 만큼 이는 원인 모를 질병이 악화됐거나 비직업성 원인으로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김용찬 부장판사)는 "비록 망인이 주된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패혈증에 걸려 사망했다고 해도 업무상과로로 인해 망인의 신체 저항기능이 저하된 것이 패혈증 발병과 그 악화에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법원 "과로 외에 패혈증 초래한 다른 원인 없어"

법원은 "망인은 나이도 젊고 비교적 건강한 체질이었다"며 "패혈증은 기존의 질병이나 기타 사유로 신체 저항력이 약해진 사람이 체내에 침입한 세균의 급속한 번식을 막지 못해 발병하는 질병인데, 과로 외에 다른 사정이 원인이 되어 패혈증을 초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공단이 주장하는 망인의 세균성 질환이 패혈증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오히려 망인이 자주 세균성 질환을 앓았다는 사실은 작업환경이 세균감염 등의 위험에 취약하였던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고 덧붙였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7구합25022, 대법원 92누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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